Me Against The World.

MuzeWeek/Editorial 2008. 4. 1. 00:05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전생에 도대체 어느 천사를 때려잡았길래 이런 환장할 업보로 되돌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한계에 온 것 같다. 여러분 중 몇은 이미 알고 있을테지만, 난 현재 서울가정법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시작한지 10개월쯤 되었다. (사실 이제까지는 이런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 탐탁치 않아서 미루고 미뤄왔지만, 더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다.) 어떻게 카투사 입영을 기다리던 놈이 공익질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찾아볼 의향이 있다면) Rough Drafts 블로그에서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자. 처음에 내가 얼마나 순진했었는지 정말 웃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초땡보 법원공익이 뭔 말이 많냐고 생각되거든 그냥 이 순간 백스페이스를 누르는게 나을 것이다. (하여간 김종민, 하하 이것들 때문에 법원이라고 하면 낙원인줄 알아요 다들.)

참고로 김종민은 서울고등법원 소속이고, 하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이다. (하하는 가정법원이 신관으로 이사한 이후 근무배정되었기 때문에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김종민은 식당에서도 자주 봤고 신문 가지러 올 때도 몇번 봤다.) 모두 얼마전까지 서울가정법원도 함께 있던 서초동 법원청사 본관 건물에 함께 상주해있지만, 우리랑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편한 곳이다. 그 단적인 이유는 바로 '법원경비대'에 있는데, 수년 전만 하더라도 공익근무요원으로 이루어진 법원경비대는 존재하지 않았고, 설립되고 나서도 그 수가 많지 않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작년쯤을 기점으로 고등과 중앙지법의 공익경비대원 숫자는 폭등해서 수십명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숫자는 늘었는데 막상 할 일은 늘지 않았다는 것? 이미 존재하는 사설 방호원 및 청원경찰들과 경위들이 넘쳐나니, 공익들이 할 일이라곤 곳곳에 책상 놓고 앉아 있는 것 뿐이다. (그나마도 다 세어봤지만 전체 공익경비대 숫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고. 하지만 내 관점은 또 외부인의 것일 수 있으니 편협되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는 경비대 소속 공익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다. 나처럼 경비대가 아닌 각 과에 배정된 공익들은 업무량이 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친애하는 가정법원은 어떠한가. 일단 경비대 소속 공익이 3명 뿐이고, (그나마도 한명은 2월이 있었던 가정법원 신관이전 업무 덕에 총무과에 파견 나와 있다.) 총무과에 1명, 민원실에 1명, 가사과에 1명 (마지막이 나) 이렇게 총 인원이 6명이다. 물론 규모가 작다면 작은 법원일 수 있지만, 업무량에 비해 공익 수가 너무나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공익들 이야기는 관두기로 하고, 가사과 공익인 내 이야기로 넘어가자. 가사과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가정법원에는 딱 3과가 존재한다. 가사과, 가족관계등록과(얼마전까진 호적과), 총무과. 총무과야 어느 곳에나 다 있는 곳이고, (그렇다고 일이 쉽다는 건 절대 아니다.) 호적과는 공익을 필요로 할만큼 업무가 많지 않다. 그럼 온갖 실무와 민원인들의 배틀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바로 가사과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외에 사랑과 전쟁에서 매번 4주 후에 보자는 곳은 조정실이 되겠고, 종합민원실에 가사 신청계와 비송계가 있지만, 어쨌든 그쪽 재판 기록과 심판문도 전부 가사과 서고에서 보존된다.) 가사과에는 원래 합의부가 2개, 단독이 7개쯤 있었지만 신관으로 이전하면서 단독이 3개쯤 늘어난 것 같다. 더불어 신청계와 비송계도 각각 2개씩이었지만 더 늘어난 것 같고 말이다. (참고로 각 부나 단독의 갯수는 판사 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망의, 보존계가 있다.

보존계란, 말 그대로 종국된 사건들의 재판기록과 판결문(심판문, 조서, 결정문, 명령문 등등)을 각 단독에서 인계받아 보존처리하는 곳이다. 또한 당사자나 대리인이 열람을 신청하거나, 항소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대출 신청이 들어오면 처리해야 하기도 한다. 편해보이지? 다른 법원이나 다른 과 보존계는 어떤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가사과 보존계는 하루에도 수십명의 민원인들이 얼굴을 들이민다. (물론 난 직접적으로 민원인 상대를 하지 않기에 당최 무슨 이유로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다수의 경우 '돈'관련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재판을 위해 제출한 회계내역이든 소송비 관련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렇게 열람 신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는가? 내가 현재 있는 서고는 가사과에 바로 인접해있고 가정법원이 생긴 이후의 모든 심판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재판기록들은 짧은 것들은 2년, 보통은 3년, 판결 선고된 사건의 경우 5년간만 보관을 한다. (워낙에 양이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종국 이후엔 별 쓰잘데기 없는 잡문서들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 재판기록들은 해당연도의 기록들만 본과 서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전부 청사 본관 지하서고에 내려둔다. 도대체 1년 동안에 쌓이는 기록들이 얼마나 되기에? 내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올해 초 폐기작업 때 계산한 07년도 보존기록 질수는 전부 600질 정도였다. 그 1질이란 골판지 박스로 되어 A4 복사용지 한 박스보다 약간 큰 사이즈이고, 폐기작업이란 보존종기에 이르른 예전 기록들을 폐기하고 작년 기록들을 옮기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내가 매달린 시간은 거의 꼬박 한 달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어쨌든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본질도 아니고 하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 수많은 기록들을 누가 처리하는가? 내가 처리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아마 공익업무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실제로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막말로 내가 아파서 드러눕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업무를 대신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시당초에 이 보존업무는 실무관의 업무이지 공익의 업무가 아니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이나 지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치 도서관 서기와 비슷하다. 보존기록 1질을 만드는 작업을 설명하자면,
1. 박스를 만든다.
2. 한질 분량으로 기록을 재정렬한다. (인계되는 기록들의 부피는 다 제 각각이기 때문에 이 분량을 스스로 계산해야 한다.)
3. 인계표와 심판문/기록의 내역이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4. 전산으로 해당 질의 번호와 심판문이 들어갈 책수, 인계표 번호, 입력시간 등을 저장한다.
5. 각 기록의 앞 표지에 보존년도와 질, 호수를 적고 보존연수에 따라 도장을 찍는다.
6. 작업한 인계표를 보고 실제 보존등록 처리하고, 질기록 목록을 인쇄한다.
7. 질기록 목록에 해당 질의 정보 등을 적어 박스의 앞면에 접착시킨다.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숫자 읽고 기억할 IQ만 있으면 어느 병신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걸 수백개를 만들어야 한다는거지. 그럼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한 질에 들어가는 노력의 양은 기록 하나 하나의 두께와 반비례한다. 쉽게 말해서 이런거다. 9mm 권총으로 사격해서 표적지를 전부 찢어놓는 것이 쉬울까 그냥 바주카포 한방 날리는게 쉬울까? 하나의 기록이 얇으면 얇을수록 박스 하나를 채우기 위해 들어가는 기록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고, 그만큼 하나의 박스에 들어가는 내 노력은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박스에는 20~60개 정도의 기록이 들어가고, 정말 두꺼운 기록들은 박스 하나를 통째로 먹기도 한다. 평균 50개정도의 기록이 들어가는 박스 하나를 작업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얼추 30분쯤 걸린다. (...그나마도 10개월차니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도 향상으로 인해 이뤄진 결과다.) 끽해봐야 도장찍고 숫자 몇개 적는게 무슨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냐고? 그냥 숫자 차순대로 적어가며 넘겨버리면 금방 끝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계를 제대로 안 해주는 일도 태반이고, 제대로 해준다고 해도 오류가 있기 마련인데 내쪽에서 대충 넘겨버리면 나중에 찾을 때 X같은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1:1로 대조해가며 확실히 해야 한다. (이것도 속도가 붙으면 스킬 없이 차순대로 적는거랑 비슷해지긴 하지만.) 실제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한 질 작업하는데 40~50분은 족히 걸리곤 했었다. 그것도 50개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고, 비송계에서 넘어오는 기록들은 한 박스에 무려 250개까지도 들어가곤 한다. (그렇다, 진짜 3장 두께 기록들도 있다.) 소위 그런 하드코어 작업이 닥치면 모든 아드레날린을 다 쏟아부어 작업한다해도 1시간 안에 끝내기가 쉽지 않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반나절동안 그것만 붙잡고 있기도 했다.)

그럼 대충 이 30분 남짓 걸리는 작업을 하루에 몇번 할까요? 내 최고기록은 하루에 17질까지 만들어봤다. 하루 일과시간이 8시간이니, 알아서 계산해보자. 물론 비수기(?)에는 많아봐야 하루에 2~3질이 전부지만, 연말연시와 인사이동철, 감사철이 되면 갑자기 보존인계량이 살인적으로 늘어버린다. 내가 처리하는 속도보다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빠르면...결과는 단순한 산수다. 거기에 더불어 5~6질에 한 권쯤 나오는 심판서는 어떻게 하는가? 손수 페이지 장수를 넘버링하고, 해당 사건의 장수를 전산으로 일일히 입력해야 한다. (이 작업도 처음 시작했을 때는 3~4시간은 가볍게 잡아먹었지만, 지금은 1시간이면 충분하긴 하다.) 그리고 요즘이 바로  '감사철'에 해당하기 때문에 서고가 편할 날이 없다. 08년도 보존기록(i.e. 올해 1월 2일부터 작업한 놈들)의 내역을 보자면, 이미 가사 일반 단독에서 넘어온 기록들이 130질이 넘었고, 민원실에서 올라오는 비송 및 신청 기록들도 합쳐서 60질쯤 된 것 같다. 재판서는 이미 판결서가 11책째고, 총 30책정도를 작업한 것 같다. (아직 4월도 안 됐는데! 참고로 내가 작년 6월 말에 새로 왔을 때 기록된 질수가 위에 적은 것보다 훨씬 적었다.) 하루에 수 없이 다루는 골판지 박스에 묻어 있는 박스독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손바닥 피부도 까지기 시작했다.

웃기는 건 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작업을, 현재 가사과에서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못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못 하지'야 않겠지. 아무리 단순작업이라도, 전임자의 인수인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기도 하다.) 전 가정법원의 재판기록과 심판서들을 모두 나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열람 들어오면 지하창고까지 기어가서 기록을 찾아와야 하는 것도 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다 좋다. 왜냐면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원칙상 공무원이 아닌 이상 재판기록이나 심판서를 처리하면 '안 되는' 공익근무요원임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타 법원에서도 보존일을 공익이 하곤 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실무관 한 명이 있어야 할 자리임은 분명하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존 작업은 그렇다 쳐도, 지하 서고에 박혀 있는 기록들에 대해 대출이나 열람 신청이 들어오면 난감해진다. 신관 이전 이후 기본적으로 왕복에만 20분 정도가 소모되는 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서고 안에서 찾는 시간이고 뭐고 다 제하고) 당장 내가 예전처럼 신청이 들어올 때마다 바로 갔다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민원인들 버럭 스킬 앞에 장사 있는가? 어떻게든 서고에의 이동 횟수를 줄여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엔 들어올 때마다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보존계 주임이 나의 살인적인 업무환경을 알기에 최근들어서는 자신이 직접 가주었기 때문.)

그럼 이렇게만 하면 친애하는 이 공익근무요원의 업무는 땡인가? 이 이외에도 수많은 잔무가 존재한다. 1. 아침과 점심에 신문을 가져온다. (그렇다. 가사과엔 석간 신문인 문화일보도 온다.) 이 일은 사실 공익보다는 여직원들이 맡게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난 들어오면서부터 했기 때문에 그다지 감흥은 없다. 2. 우편 배달부 역할을 한다. 다른 웬만한 곳도 상황은 비슷하겠지만, 실제로 재판부가 속해있는 과들에서 배출되는 (혹은 들어오는) 우편물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개인 우편물들은 귀여운 수준이지만 아무튼 그것도 매일 꽤 들어오긴 한다.) 얼추 큰 마트에 배치된 쇼핑용 카트 정도의 사이즈 되는 송달용 트레이가 있는데, 송달 나가는 우편으로만 꽉꽉 담아 한 수레씩 매일 나온다. (...어이없지만 이건 우체국까지 가는 것보다 우체국에 도착해서 그 많은 우편물들 내려놓는게 더 일이다.) 3. 용도계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사무실 물품이 떨어지면, '나'한테 와서 찾는다. 재판용 양식들, 복사용지 및 조서용지, 프린터 토너, 복사기 토너, 기타 등등등. 신관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가사과 서고가 창고 역할도 같이 했기 때문에 (사실 지금도 다르진 않은데, 옮겨오면서 서고 크기가 줄어버려 다른 잡동사니들은 다 밖으로 밀려났달까.) 무슨 고물상 알바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사실 이건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한마디로 내가 '총무과'와 가사과를 이어주는 메신저가 되었달까? =ㅅ=;; 솔직히 1, 3번은 그 수많은 재판부들에 단 한 명 배치된 공익근무요원으로써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쳐도, 2번은 어이없이 떠넘겨져버린 업무임에는 틀림이 없다. 4. 복사를 한다. 민원인들이 기록을 열람하잡시고 오면, 물론 보통의 경우 난 기록을 찾아다주는 것으로 일이 끝나야 정상이지만, "팔목을 다쳐서..."라고 나오면 대략 곤란해진다. 물론 난 학원집 아들이기 때문에, 나의 인생을 복사기와 함께 했기에 이건 일 따위도 아니지만, 대략 1000페이지 쯤 되는 재판기록을 개힘들게 찾아다줬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나보고 대신 복사를 해달라고 하면........(후략) 참고로 재판기록은, 전부 기록용 철끈으로 철이 되어 있고 그걸 관련 실무관 이외에 풀면 규정에 어긋나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동 복사' 이런건 안드로메다에나 있고, 한장 한장 넘겨가며 수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000페이지면 몇시간 걸릴까요? (물론, 1000페이지는 정말 아방가르드한 케이스고 보통은 평균 100페이지 정도다.) 정확하게 4시간 5분 걸리더라. (...참고로 똑같은 기록에 똑같은 사람이 2번째로 나한테 부탁을 한 것이었는데, 복사 인지료 안 내고 튀었다고 한다.)

5. 통역을 한다. 이건 무슨 소리? 나 이전에 있던 가사과 공익이 안 좋은 선례(?)를 남겨놓았는지, 뜬금없이 배정된 첫날 "영어나 중국어 좀 할 줄 아냐"는 질문이 들어오더라. 얼떨결에 "영어는 쵸큼..."이라고 대답했던 업보로 인해, 아직까지 난 통역관 신세다. 여기서 질문. 가정법원에는 외쿡인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요? 답은, 하루에 평균 2~3명 꼴. (같이 온 사람은 치지 않는다. 1케이스 1인.) 물론 한명도 안 오는 날이나, 통역을 데려 오는 경우도 꽤 되기 때문에 내가 매일같이 불려가진 않지만, 일단 한번 붙잡히면 그날 하루는 거의 종친다고 보면 된다. 외국인들이 이혼을 하러 오면, 보통은 당사자 2명이 함께 와서 즉시조정으로 하루에 해결하고 가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에, 통역 없이 온 놈들이라면 결국 내가 조정실에까지 따라가서 통역을 해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시조정은 보통 오후 4시쯤 시작하는데, 끝나는건 지맘대로;;) 내 최고 기록은, 하루에 외국인 3쌍까지 통역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뭐 통역비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꼼짝없이 2~3시간은 아무 일도 못하고 잡혀 있게 되니, 결국 그 업보는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장 외국에서 전화만 와도 나를 찾아대니 이건 뭐...(전화도 꽤 온다.)

정리를 해보자면, 내 업무는 보존 작업 + 창고 관리 + 용도 관리 + 신문 + 송달 + 복사 + 통역이 되겠다. 쉽게 말하자면, 실무관 + 잡역부(Handyman) + 통역관? 가사과 직원들은 나를 두고 '멀티플레이어'라 부른다. 하지만 총무과에서는? 작년 12월부터 도저히 밀려드는 업무에 치여 보존계에 인력을 늘려달라고 가사과장에 이야기를 해왔다. 그랬더니 총무과에서 얼마 전에 나에게 말하길, "보존계 일 많냐? 한 2시간 일해?" ...........싸우자!! 거기에 결정적으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일을 적자면, 총무과 소속 공익 선임이 있는데 총무과 공익도 그 고충이 장난이 아니기에 (가사과 공익은 사무일에 치인다면, 총무과 공익은 막노동에 치인다.) 평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름대로 위로를 얻고는 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위에서도 언급한 보존계 주임이 휴가를 냈다고 했는데, 아마 가정에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실제 보존계에 인력은 나와 그 주임 뿐이기 때문에 둘 중 한명이 휴가를 내면, 나머지 한명이 그 하루는 모든 일을 다 하게 된다. 그리고 주임이 휴가를 낸 경우, 내가 모든 민원인 상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휴가를 냈다고 다른 사람이 보존일을 대신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뿐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문제는, 이런 상황이 되면 내가 '자리를 뜰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석간 신문을 가져오는 일이라든가, 우편을 가져다주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목요일은 잠시 신문을 가지러 갔었는데 2시가 되도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고, 금요일은 아예 그럴 여유도 없어 총무과 공익 선임에게 '바빠서 못 가겠음'의 요지의 문자를 보냈다. (원래는 총무과 신문은 그쪽에서 알아서 가져와야 하지만, 신관 이전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내가 같이 가져다주게 되어버렸다. 물론 대신 아침 신문은 다른 공익이 가져오게 되었지만.) 그랬더니 "너 뭐하는데 시간이 없어 왔다갔다는 할거아냐 한다고 한건 해야지 어제도 그렇고"라는 답문이 왔다. 모든 공무원들이, 그리고 다른 모든 주변 사람들이 내가 논다고 생각해도, 적어도 그 선임만큼은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잠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장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여유도 없고, 힘도 없던 상황이라 저녁 점호때까지 기다렸지만 웬일인지 내가 총무과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산하는 분위기더라.

그렇게 퇴근을 하고, 저녁에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고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선임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넌 한숨이 끊이질 않는대. 그래서 뭘 시킬 수가 없대. 주변 사람들 사기도 떨어지고...니 신분이 공익인 이상 어쩔 수 없어. 솔직히 기분 나쁜건 이해하는데 그냥 넘길 줄도 알아야지." 뭘 시킬 수가 없다니? 난 다 상관없다. 일이 얼마나 많든, 그걸 아무도 도와주지 않든, 도와주기는 커녕 일을 더 떠넘기든 어쨌든 내가 하기로 한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한다는 생각들은 안 드나? 자기들 눈에 안 보이니 내가 서고에 쳐박혀서 안락하게 삶을 즐기고 계시는 줄 아나보다. 총무과에서만 해도 10개월이나 있었던 놈한테 "2시간 정도는 하냐?"라는 질문을 할 정도면, 그 무관심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당연히 한숨이 끊이질 않지. 정말 전임자들중에 누군가 그랬다는 것처럼, "이 !@#%$^끼들!!! 이딴식으로 할거면 나 안해!"라며 박차고 나와버리고 싶지만 내가 그럴 위인도 못 되니, 어쨌든 시키면 할 수 밖에 없는 병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한숨도 못 쉬나? 누구보다도 더 깊고 맛깔나게 쉬어줄 수 있지. 10개월이 되도록 막내신세인데다 아주 만만한 놈으로 찍혀서 한숨만 늘었는데, 이젠 한숨 쉬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한다니 그냥 내가 숨을 멎어주면 되나?

남들 다 점심 먹을 때 난 일에 치여 우체국 갈때 잠깐 빵 사먹어야 되고, 퇴근하면 아무 생각도 없이 쓰러져야 되고, 정말이지 공익 10개월 만에 몸이 반병신이 된 것 같다. (실제로 연초 폐기작업 때는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쓰러져 응급실까지 다녀왔지만, 하루도 쉴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눈물로 휴가를 삼켰던 기억이 있다.) 난 내 일이 많아서 서러운 것이 아니다. 여타 공익들은 전부 공부하고 놀고 지네 맘대로 시간 활용하는 동안 난 아무것도 못한다고 서러운 것이 아니다. 몸이 힘들고 피곤해서 서러운 것도 아니다. 뭐 사회 초년생들에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닐테니. 돈을 많이 못받아서 서러운 것도 아니다. 어쨌든 야박한 편의점 사장이 주는 알바비정도는 되니까. 하지만 난 내 머리가 병신이 되어가는 것이 서럽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서럽다. 요즘 통역을 하다보면, 자꾸 조금만 어려운 단어들만해도 잘 안 쓰게 된다. 그래서 난 내 영어 실력이 떨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내 전체적인 언어력이 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i.e. 한국말로도 뭐라고 하는지 생각 안 나곤 한다.) 그리고 작년 12월 말 종무식이 끝난 후 사무실 정리를 하다 민원인용 테이블에 묶여있다 잠깐 풀어둔 돋보기를 다시 묶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묶는지 모르겠다'. 매듭을 어떻게 묶는지 순간 생각이 안 나더라. 얼마나 좌절스러운 경험인지 아는가. 빌어먹을 IQ 50만 넘으면 묶을 줄 알아야 되는 매듭을,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 생각이 안 나더란 말이다. 내가 공익생활을 시작한 이후 정말 설움에 복받쳐 울음을 터트렸던 적은, 바로 그 때와, 지난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가끔, 아니 자주, 공익이 아니라 원래대로 카투사를 갔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이 훨씬 낫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 머리를 병신을 만들어가며, 개같이 일을 하는데 아무도, 말 그대로 단 한명도 이해해주는 이가 없다. (그리고 이해한다고 하는 이들도,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란 자신이 직접 보고 있는 것이 아니면, 대충 넘겨버리는 습관의 동물이니까.) 어쩌다보니 인생이 '나 vs 세상'이 되어간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난주 금요일에서 무려 사흘이나 지나, 우연히 만우절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 글은 한 슬픈 공익광대의 자학개그였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2008.05.02일자 Post Script :
한국일보 뉴스 - "공무는 공익에게" 살판난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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