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 Kata : 건카타를 아십니까?

MuzeWeek/Culture 2008. 4. 29. 14:15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매도를 당했던 커트 위머의 데뷔작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2002)을 기억하십니까. 한국에는 2003년쯤 개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매트릭스는 잊어라'는 어이없이 자신만만한 선전문구 때문인지 총체적인 뭇매를 맞고 수장되었었죠. 하지만 그렇게 흥행에 실패한 이후, 오히려 몇년에 걸쳐 끊임없이 평점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보통 이 영화가 소위 우리가 말하는 매니아 영화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그렇게 된 동력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바로 Gun Kata라는 무술 형태의 소개 때문이었다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건카타가 뭐냐구요? 왜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주인공 크리스챤 베일 아저씨가 쌍권총을 들고 고고춤을 추는 모습을 기억하실테지요. 쉽게 말하면 '총검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총검술은 보통 소총을 이용한 근거리 전투술이기 때문에 (그리고 말그대로 총열에 다는 대검을 이용한 검술이기 때문에) 건카타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카타란 무엇을 말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보도록 하죠.

이퀼리브리엄에 등장하는 설명은 이렇습니다. "Through analysis of thousands of recorded gunfights, the Cleric has determined that the geometric distribution of antagonists in any gun battle is a statistically-predictable element. The Gun Kata treats the gun as a total weapon, each fluid position representing a maximum kill zone, inflicting maximum damage on the maximum number of opponents, while keeping the defender clear of the statistically-traditional trajectories of return fire." (Wikipedia 'Gun Kata' 항목 참조) → "수많은 총격전을 기록하고 분석한 결과, 우리 클레릭들은 모든 형태의 총격전에서 상대방의 위치 분포가 확률적으로 예측가능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카타는 총을 완전한 무기로 여깁니다. 각각의 부드러운 동작 하나 하나는 모두 극대화된 살상범위, 최대의 적에게 입힐 수 있는 최대의 피해를 의미하며, 통상적인 적의 사격 궤도를 완벽하게 회피하게 합니다." 참고로 Gun Kata에서 Kata란 일본어로 형(形, 혹은 型)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즉, 제1식이니 할 때의 제식이나 품세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퀼리브리엄에 등장하는 스틸샷 모음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두 손을 모두 곧게 펴보세요. 그리고 그 끝에서 죽음의 광선(?)이 나간다고 생각해봅시다. 이런 손을 지니고 하는 격투기가 바로 건카타인 셈입니다. 따라서 이 무술이 제대로 발현되려면 적어도 2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일단 초인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제외하고;;) 1) 상대가 근접해 있어야 한다. 2) 총기 반동이 사실상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나 싶군요. (물론 관통력이 좋지 않은 낮은 구경의 권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요.) 그리고 1번을 봐도, 막상 건카타가 실전 무술로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중거리 이상(즉,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는 직접적인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극복해야 하겠죠. 근거리에서야 총구와 궤적을 직접적으로 틀어버릴 수 있다고 해도, 팔이 닿지 않는 거리 이상이라면 먼저 쏴버리거나 예측해서 피하는 수 밖에 없으니까요. (...매트릭스도 아니고 말입니다.) 따라서 영화에서도, 소수의 고수를 상대할 때는 일부러 근접해서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문어사냥 중인 그린 애로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건카타를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일단 기대를 해봅니다. 아무튼 이렇게 이퀼리브리엄에서 소개된 건카타는 커트 위머의 차기작 울트라바이올렛(Ultraviolet, 2006)에서도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 생뚱맞게도 Smallville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죠. (...여기서도 일단 스몰빌Justice League노선을 탄 이후 온갖 잡템들의 집합소가 되었다는 대전제를 기억해야;;) 아마 7시즌의 11화였나..블랙 카나리가 등장했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 에피소드에서 그린 애로우렉스 루터가 한바탕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건카타의 형식으로 싸웁니다. (아쉽게도 스틸샷을 떠보려해도 영 화질이 좋지 않아 때려쳤습니다.) 여기서도 렉스가 권총을 빼들자 그린 애로우가 안으로 파고 들어 손으로 쳐내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그렇게 한참을 싸우다 중거리로 떨어져 서로를 향해 동시에 발사했을 때, 친절한 클락 켄트가 등장해 막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둘 다 죽었겠죠. (어??!!!) 여하튼 건카타를 오랜만에 다른 영상물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유쾌했던 것 같습니다.

...넵 너희도 할 수 있습니다!

건카타는 물론 화려한 영상미와 초인적 카타르시스에 가려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격적인 총기 무술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면 몸이 남아나질 않겠지만;; 일종의 컨셉을 제시함에 있어서는 충분한 성공을 거둔 것이죠. 20세기 총격전은 원거리 저격, 중거리 난사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왜냐면 아무도 근거리의 궤적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또한 근거리의 표적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또한 예전의 총격이란 상대적으로 간단한 것에 해당했습니다. 정확히 조준하고, 반동만을 계산하면 웬만한 타겟은 적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총기를 다룸에 있어 그 누구라도 보통 이상의 사수는 될 수 있지만, 무술에서는 그렇지 않죠. 끊임없이 단련하고 수련해야 적어도 일반인 이상의 내공을 지니게 됩니다. 건카타 역시 끊임없이 수련해야 하는 무술의 일종이고, 그 도구를 총기로 택했을 뿐입니다. 아직 그 모델은 조금 거친 면이 있고 어쩌면 예전 무술들의 답습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건카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