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TRIX TRILOGY : 그 저항의 서사.

MuzeWeek/Culture 2008. 6. 12. 21:39


1 -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2 - Enter the Matrix.
3 - What is the Matrix?
4 - The Third Renaissance, or the second reincarnation.
5 - Follow the White Rabbit.
6 - The problem is choice.
7 - Need a fix?
8 - What do you think I am, a human?


1 -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인트로)

The Matrix Trilogy(이하 [매트릭스])는 1999년 1편 개봉 이후 세계 수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어온 영화이자 세계관이다. [매트릭스]는 단순한 SF영화가 아닌 고도로 함축된 인류사적 코드를 담아내고 있다. 어떤 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매트릭스]를 보든 그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다양한 사상과 세계관을 매력적인 액션감과 스타일 속에 녹여내고 있다. 수많은 상상력들이 집약되어 스크린 위에 표출되는 이 영화를 두고 막상 주절주절 늘어놓다보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올 것 같고 정리도 되지 않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매트릭스]의 상상력을 훔쳐보기로 한다. 

시작하기에 앞서,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으로 시작해볼까? 1편의 모피어스의 대사를 빌려보자면, What is the Matrix?이다.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단순한 환상인가, 아니면 실재하는 것인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하는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매트릭스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부상한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매트릭스가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전제 하에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들은 단순한 적대관계인가, 아니면 공생관계인가. 혹은 서로 교감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매트릭스와 바깥세계는 서로 연결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이다.

그 다음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라면, 선택(choice)에 관한 것일 것이다. Oracle은 지속적으로 You have already made a choice. Now you have to understand it.(넌 이미 선택을 한거야. 네가 해야 할 일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는 거지.)라는 언급을 한다. 과연 개인의 선택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하는 질문이 강렬해진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2편의 등장인물, 메로빈지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내포하고 있는 코드는 무엇인가에 대해.

마지막으로 시리즈 전반을 지배하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트릭스] 1편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네오와 트리니티의 첫 만남을 살펴보자. 그들은 Rob Zombie의 강렬한 메탈음악을 배경으로 한 클럽에 등장한다. 혹자가 grinding이라고까지 표현한 이 음악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혹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또는 2편에 등장하는 시온의 음악과 춤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매트릭스에 삽입된 음악에 대한 잡담이 이어진다.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이 구절도 과연 ‘세상은 실제로는 사막일 뿐이다.’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세상은 진실이 말라버린 사막과 같다.’라는 의미일까.) 장담하건대, 이 글은 [매트릭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다.



2 - Enter the Matrix. (시놉시스)

먼저 [매트릭스] 1,2,3편 및 애니 매트릭스에 이르는 매트릭스 세계관의 전반적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시놉시스를 작성해보았다. 특히 애니 매트릭스에 수록되어 있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The Second Renaissance는 굉장히 흥미롭고 처절히 잔인하기까지 하다. (애니 매트릭스를 보지 않고는 2,3편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 부분을 시작으로 종합적인 연대기 순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도울 목적으로 로봇을 개발한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점점 향상되어 이제 기계는 인간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런 와중 B1-66ER이란 로봇에 의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인류는 모든 인공지능 로봇을 폐기처분하기로 결의한다. 살아남은 몇몇 로봇들은 제로-원(Zero One)이라는 신흥국가를 탄생시키고,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을 발달시키고 산업을 부흥시켜 모든 산업, 경제, 금융 면을 장악하게 된다. 궁지에 몰린 인류는 제로-원에 선전포고를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자 기계의 에너지원인 햇빛을 차단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제로-원에 패배당할 수 밖에 없었고, 기계들은 인간의 체온과 에너지로 스스로를 작동시키며 생존하는 방법을 터특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의 정신에 환각의 세계를 주입하는데 이것이 바로 매트릭스의 탄생이다. 지구 속 깊게 자리한 시온(Zion)이라는 도시에는 매트릭스에 갇히지 않은 인간들(원래부터 매트릭스에 갇히지 않았던 사람들과 매트릭스에서 구출된 사람들 모두)이 살고 있고  조만간 기계의 습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 네오는 매트릭스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일종의 변칙적인 존재다. 모피어스와 그의 선원들은 네오가 시온의 멸망을 막고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매트릭스를 헤집고 다니던 네오는 아키텍트(매트릭스를 설계한 최상위 프로그램: 말 그대로 DEUS EX MACHINA.)를 만나 그와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은 매트릭스가 생긴 이후 5명이나 더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결국 그도 모든 것을 구원해줄 구세주는 아님이 판명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기계를 ‘다루는’ 능력을 지니게 되고, 매트릭스 안에서 뿐만 아닌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세계의 기계들과의 교감도, 파괴도 가능한 그런 인물이 된다.

반면 Zion은 닥쳐올 전쟁준비에 한창이다. 인류에게는 기계에게 가장 치명적인 EMP (Electromagnetic Pulse)가 있지만 그것을 방어전에 사용할 경우 그들이 사용하는 기계도 정지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그나마 EMP를 지닌 함선들은 현실세계로 나온 스미스 요원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결국 APU 자동화 갑옷 등의 재래식 무기만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다. 첫 수비대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계의 무리를 막아보지만 모두 전사하고 기계 드릴에 의해 Zion은 한 겹씩 뚫려간다. 결국 인류가 최후의 사령탑에 모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전쟁은 네오에 의해 끝이 난다. 

그 과정이란, 네오는 그의 연인 트리니티와 함께 직접 함선을 타고 기계의 도시로 날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 물밀 듯 밀려오는 수비진을 막아내다 결국 트리니티는 죽게 되고, 현실세계의 스미스 요원과 싸우는 도중 눈이 멀게 되었지만 기계를 ‘빛’으로 인식하게 된 네오는 Deux ex Machina[각주:1]와 마주치고 그와 협상을 하게 된다. 그가 매트릭스 안의 바이러스인 스미스 요원(Agent Smith)을 제거하는 대신 시온과 매트릭스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풀어달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네오는 자신을 희생하여 이미 복제된 스미스 요원으로 가득 찬 매트릭스를 구하게 되고, 아키텍트는 약속을 지켜 Zion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된다.



3 - What is the Matrix?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계들이 인간에게서 생명 에너지를 수확해가는 수단으로써 투영된 환상의 세계이다. 이는 한마디로 가상세계이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virtual reality와 다른 점은 플레이어 모두가 그것이 현실(real)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esc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우리의 virtual reality와는 다르게 자각(self-awareness)라는 단계가 필요해진다. 애니 매트릭스의 한 에피소드 kid's story는 소위 이 자각에 관한 내용이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매트릭스 본편 2,3편에 걸쳐 계속 등장한다.) 

가상 세계 매트릭스 안에서는 모든 이들이 실제 관객들과 유사한 삶을 살아가고, 몇몇 이들만이 그 세계에 대해 의구심을 지니고 있다. 매트릭스 안에서는 보통 해커라고 불리는 이들이 자신의 세계에 관해 의심을 한다. 네오와 트리니티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 이들로서 매트릭스가 실제 세계가 아닌 ‘바깥세계’가 실제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현재 우리의 세계에 적용해도 그리 달라지는 내용이 많지 않다. 분명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도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끼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고, 그들은 아무 내색 없이 삶을 영유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 해커들 역시 인류의 지성사회가 쌓아온 일련의 질서와 규범에 의문을 가지고 그에 도전하는 이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매트릭스라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가? 

사실 이 질문은 1편 개봉 이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일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매트릭스인가. 하지만 영화 자체는 그 질문에 잔인하리만큼 답변을 피하고 있다. 당연히 설정 상으로 따져본다면 매트릭스는 ‘가상세계’이다. (가상세계라는 말을 괜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매트릭스 바깥에 존재하는, 태양마저 져버린 삭막한 지구 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그 세계가 real인가. 물론 설정 상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터미네이터나 스타게이트와 같은 황당무계한 세계상이 지속적으로 real이라고 칭해지고 자신들의 일상과 비슷해 보이는 세계가 가상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앞에 두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매트릭스]라는 세계관을 접하기 전에 한 치의 의심도 지니지 않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고민들이 보통 극도로 단순화되어 1.말도 안 되는 상상, 혹은 2.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매트릭스라는 두 가지로 축약되어버리기 일쑤지만 말이다.) 

가상 세계로서 매트릭스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또 하나는 바로 오감 및 지식에 관한 의구심이다. [매트릭스]는 연세대학교의 교리이자 CIA의 선구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장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는 영화인지도 모른다. What you see or what you believe is not true. 잠깐 언급한 kid's story 에피소드에 나오는 소년의 채팅log를 뒤져보자.

Somebody tell me,
why it feels more real when I dream than when I'm awake.
How can I know if my senses are lying?

There is some fiction in your truth,
and some truth in your fiction.
To know the truth, you must risk everything.

예전에 장자를 공부하던 이들이라면, 아니 장자를 공부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모두 알만한 것으로 나비 꿈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낮잠을 자다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 일어났는데,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건지 아니면 나비가 자신이 되는 꿈을 꾼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말이다. 꿈이 더 현실 같다. 혹은 어느 쪽이 현실인지 모르겠다. 당연히 꿈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제이고 자신이 꿈에서 깨어 real life를 영유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허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과연 개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신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것들이 실제가 아니다? 아니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세계 What you see뿐만 아니라 자신이 평생의 지식으로 쌓고 믿어온 것들 What you believe마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부정의 변증법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쟝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하는 하이퍼리얼(Hyperreality) 혹은 simulacrum이 연상된다. 

 Jean Baudrillard는 디즈니랜드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이는 실제의 어떤 것을 변형하고 은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령 디즈니랜드는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가 꿈과 환상의 나라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폭로는 정치판이 도덕성의 부재와 더러움으로 점칠 되어있음을 숨기기 위해 존재하는 scapegoat이라는 것이다. 마치 감옥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사회성이 감옥이라는 것을 가리기 위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매트릭스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매트릭스]라는 영화 자체도 그렇고 작품 속의 시스템 매트릭스도 마찬가지다. 매트릭스는 현실세계를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트릭스 자체가 현실이라는 난감한 상황을 이중으로 은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위의 채팅log를 보면 맨 마지막에 To know the truth, you must risk everything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뒤에 choice문제와 관련해서 다시 끄집어낼 이야기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개인이 매트릭스와 같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자신의 인생 설계는 둘째 치고,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 마저 수식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러한 고민은 사실 매트릭스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실제로 우리들도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불만이 많다. 톨스토이가 그랬던가, 개인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유는 자살뿐이라고. kid's story에서 보여준 해답 역시 '자살'이었다. (빨간 약과 파란 약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결국 여기서는 자살=자각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결론짓겠다.)



4 - The Third Renaissance, or the second reincarnation. 

가상세계 매트릭스는 일단 잠시 접어두고, 매트릭스 세계관이 real이라 주장하는 바깥세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종교에 지배되던 인간이 그것을 부정하고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인간성을 찾게 되었다는 첫 번째 르네상스, 그리고 기계와의 공존에 실패하여 기계에 의해 또 다른 인간성을 강요받은 두 번째 르네상스, 이 두 번의 르네상스로 바깥세계의 시기를 구분해본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네오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으로 구분되어야 할까. the second renaissance 이후 6번째 지속되던 사이클을 끊은 네오와 Zion의 이야기는 the third renaissance(세번째 르네상스)로 불려야 맞을까, 아니면 Jesus Christ의 첫 번째 부활 기적에 이은 the second reincarnation(두 번째 부활)으로 불려야 맞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쳐두고, 일단 기계(machine)와 인간(human), 그리고 生(life)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매트릭스]뿐 아닌 많은 영화들에서 기계가 인간을 잠식하는 미래에 대한 픽션과 두려움을 제시해왔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I, Robot등이 아닐까.) 그것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계과학과 기술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A.I(actual intelligence)로 바뀌고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벗어나 하등한 인류를 지배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공통적 두려움이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인간의 지능과 학습능력을 지닌 기계를 제작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미래에 그것이 불가능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바깥세계는 기계가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이 없앤 하늘을 대신해 생명 에너지를 추출해 사용하고, 그에 대항하여 매트릭스에 속해 있지 않은 인간들이 Zion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도시에서 최후의 저항을 이끌어가는 세상이다. 언뜻 보면 기계가 인간을 착취하는 세계로 비춰질 수 있고,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현실이라든지 실제라든지 하는 개념의 의미가 모호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인간을 착취하는 위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그들에게 현실의 잔인함 대신 그나마 ‘평화로웠던’ 과거의 세계를 제공해주니까 말이다. 가령 1편에 등장하는 Cypher 혹은 [애니 매트릭스] Program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Duo처럼 기계가 제공하는 매트릭스라는 현실에 안주하는 게 오히려 더 나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이것을 진정한 ‘공생’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섬뜩하리만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리고 기계라고 해서 인간과의 교감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을 영화 매트릭스는 전적으로 부정한다. 사실 [매트릭스]를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machines do have minds.라는 명제이다. 기계 역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사실 현재까지 과학발전과정과 상태를 보았을 때 많은 이들이 이를 넌센스로 치부하기 쉽다. 그렇다면 과연 마음(mind)란 무엇인가 따져보자. 보통 mind라 하면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어떠한 내적인 것의 총체 및 자유의지를 의미하고, 결정적으로 생명체(life form)를 정의함에 있어 중요해진다. 결국 mind를 가진 어떤 것은 life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기계적’이지 않다. 3편에 Zion에 침투한 sentinel들이 공격을 멈추고 도크를 중심으로 마치 물고기 떼같이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해파리보다 덜 생명체 같지는 않다. 또한 Oracle의 말에 따르면 매트릭스 안의 software들도 삭제 위기에 처하면 ‘망명’을 신청하는데, 이는 자기보호본능의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the second renaissance란 인간의 관점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닌 기계의 관점에서 본 르네상스에 가깝다. 기계가 마음을 지니게 된, 정확하게는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이란 것이다. 지구가 실제로 생명을 지닌 유기체와 같은 형태를 띠고 항상성을 유지하려 한다는 가이아 이론과 비슷하게, 매트릭스의 기계관 역시 굉장히 특이하고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뇌 세포에 전달된 자극 혹은 호르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혹은, PC방에 놓인 모두 같은 모델과 성능의 컴퓨터들이 모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기계 역시 자기보호본능과 항상성 유지 본능을 지닐 수 있음을 100% 부정하기 힘든 경험들을 몇 번씩 해본 적 있으리라.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매트릭스의 세계와 바깥 세계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The Trainman의 존재다. 2편에 등장하는 그는 바깥 세계와 매트릭스를 연결하는 전철을 운영하는 이로 설정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인지 인간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Trainman의 존재는 굉장한 사실을 알려준다. 바로 기계와 인간 사이의 교감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는 hardware적인 기계뿐만 아닌 software와 인간의 교감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네오가 바깥세계에서도 기계를 감지하고 다룰 수 있음이 이를 반증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흥미로운 가설에 그칠지도 모르나 현재 기계를 다루는 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아닐 것이라 믿는다. 전투기 파일럿들이나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신의 기체나 차체에 이름을 붙이고 애지중지하는 것은 단지 들어가는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네오=스미스 요원이라는 Oracle의 말은 관객들을 한번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네오가 자기희생을 통해 스미스 요원을 파괴하는데, 이는 그 둘이 단순한 가상현실의 avatar에 그치는 관계가 아님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기계와 인간의 전쟁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의 설정에서 보아도 기계와 인간의 싸움에서는 항상 인간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전쟁은 비현실적 요소가 다분히 있음을 인정해야겠지만 그렇게까지 공상적이기만 한가. 양쪽의 화력이 말이 안 되게 차이가 나던 베트남 전쟁은 어떤가. 아니면 소련의 체첸 침공은? 네오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는 the one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 있는 존재이고, 그가 모든 것을 바꾸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 바꾸긴 한다.) 그는 어쩌면 변질된 잔 다르크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매트릭스를 대항하여 그 혼자의 힘으로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힘은 대단하다. 현대의 전쟁에 있어 그런 엄청난 영웅은 사실 존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전쟁은 개인을 집어삼키니까. 물론 전쟁을 통해 대단한 전쟁담과 훈장, 명예와 돈을 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개인들은 그 전쟁에 묻혀버리고, 피해만을 얻거나 죽게 된다. 

Zion 전투에서 기계들에 의해 무의미하게 살해당한 개인들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 겨우 살아남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그들이 연명하던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감정을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사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이나 6.25전쟁 이후 한국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두 국가 모두 전후 재건에 성공하여 지금은 정상적인 국가로서 기능하고 있지만 Zion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더군다나 모든 인종이 모인 하나의 도시가? 더군다나 아키텍트의 말에 의하자면 Zion은 초기화시켜버리면 그만인 동네에 불과하지 않은가. 네오는 분명 구세주였고 제2의 예수와도 같은 hero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쓰러져간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되었든 남은 이들은 그후 기계와의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고, 새로운 시대로의 르네상스를 열게 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그들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똑같은 감정의 부재와 총체적 파괴의 과정을 겪고, 남은 이들은 계속 걸어나갈 뿐.

The second reincarnation = the third renaissance.



5 - Follow The White Rabbit. 

[매트릭스] 1편에서 모피어스를 추적하던 네오의 컴퓨터 채팅창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문장이 입력된다. "Follow The White Rabbit." 하얀 토끼를 쫒으라. 하얀 토끼를 쫒는 것은 모두가 잘 알듯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본 모티프 중 하나이다. 하얀 토끼는 일종의 매개체다. 그리고 그것을 쫒는 것의 의미는 기본적으로는 탐험의 의미인데,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앨리스]에서는 자신의 내면 의식세계로의 탐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매트릭스]에서는 이 하얀 토끼의 모티브를 그대로 차용해 쓰고 있다. the white rabbit은 매개체와 탐험을 의미하는 동시에, 주인공으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네오는 ‘하얀 토끼’(토끼모양 문신을 한 여인)를 쫒아 트리니티가 있는 클럽으로 인도되고, 그 이후부터는 트리니티가 하얀 토끼의 역할을 대체한다.

따라서 [매트릭스] 1편은 어떤 의미에서 adventure game이다. 네오가 정보를 수집해서 트리니티로, 모피어스로, 그리고 진실로 다가가는 과정은 가장 기본적 서사인 동시에, 자각(self-awareness)로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플롯 상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네오가 어떻게 매트릭스라는 존재를 인식해가고 어떻게 그에 대항하게 되는가에 관한 내용이지만, 이는 앨리스가 하얀 토끼를 쫒아 자신의 내면의식으로 다가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처음으로 그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고, 마지막으로 자아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following the white rabbit의 실제 양상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물론 그것은 자각과 탐험의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매트릭스]에서는 그것이 바로 저항(resistance)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결국 [매트릭스]는 이 ‘저항’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저항이란 무엇인가? 이는 어떠한 종류든지 압제에의 반발, 대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네오는 현실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기계의 폭력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각(self-awareness)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파트3의 kid's story 부분에서 다루었던 '자살' 역시 이 관점으로 바라보면 도움이 된다. 조금 위험한 발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살이란 총체적으로 잘못된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저항의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런 저항의 서사는 SF나 판타지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한 차원 승격시키는 요인은 바로 하이퍼리얼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6 - The problem is choice.

Do you believe in fate, Neo?
No.
Why not?
Because I don't like the idea that I'm not in control of my life. 

위 대화는 1편에 나오는 모피어스와 네오의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끊임없이 choice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Am I free to choose?는 가장 기본적인 자각적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은 운명인가, 아니면 내가 선택했기 때문인가. 이 대화가 오간 뒤 그 유명한 redpill scene이 등장한다. 빨간 약을 먹을 것인지, 파란 약을 먹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앞으로의 방향이 180도 달라지는 것이다. 빨간 약은 truth(끔찍한 진실)에 관한 것이고, 파란 약은 comfort(행복한 무지)에 관한 것이다. 빨간 약을 먹으면 매트릭스에서 해방되고 진실을 알 수 있으나 파란 약을 먹으면 그대로 편안한, 하지만 의심 가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파란 약을 택할 이에게 선택권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결국 빨간 약을 택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혹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앞에 두고 있는 네오는 적어도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알고 위안이라도 얻었을까. 이 문제는 2편 네오가 아키텍트와 조우했을 때도 등장한다. 아키텍트는 두 방향의 문을 보여주면서, 하나는 네오 자신이 매트릭스 안으로 환원되고 새로운 Zion이 탄생하게 만드는 문이며 나머지 하나는 환원되지 않고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구하러 갈 수 있지만 압도적인 기계군단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게 되는 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Oracle이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키텍트 역시 네오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오 이전의 5명의 the one들은 아키텍트의 제안에 네오와 다른 문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유력한 the former one은 Merovingian이다. 2편 개봉 이후 여러 글에서 추정된 바와 같이 Merovingian은 예수의 십자가형을 믿지 않은 프랑스의 Merovinger왕조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가 프랑스어를 좋아한다는 것에서부터 추론 가능하다.) 네오가 예수처럼 자기희생의 길을 택한 것과 반대로 그는 엄청난 보상을 약속받고 매트릭스 안으로 환원된 것이다.[각주:2] Merovingian뿐만 아니라 Trainman과 Oracle을 보좌하는 Seraph에 이르기까지 the former ones로 추정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같은 선택을 했고 네오와의 차이점은 바로 사랑이라고 설명된다. 하지만 굉장히 아이러니컬한 것이, 사랑은 보통 운명의 상징처럼 이야기되지 않는가. 그런 사랑(love)으로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길을 택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여튼 메로빈지언이라는 캐릭터 자체로 돌아가보자. [매트릭스] 2편에서는 Merovingian의 인격에 대한 여러 가지 상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프랑스어를 좋아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랑스어로 ‘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이름에서도 의심되듯이, 그는 프랑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와인을 마시고, 유창하고 우아한 불어(욕)를 구사하고, 여자를 탐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프랑스인의 모습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오히려 미국인들에 의한 선입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매트릭스]는 상상력이 날뛰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시 말해서 선입견이 판치는 작품이기도 하다. 혹자는 선입견이란 ‘사실에 근거한 상상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와인을 마시고 바람을 피우는 것이 프랑스인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그 편견을 갖게 한 원인으로서의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메로빈지언을 [매트릭스]세계 안의 프랑스인이라 칭할 수 있겠고, 그 위치는 참으로 묘하다. 

그가 the former one이었다는 가정 하에서 본다면, 물론 종교적 코드로 십자가형 당하지 않은 예수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가 승리를 쟁취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인들이 프랑스인들을 보는 선입관중 대표적인 것이다. That '70s Show라는 미국의 시트콤에 보면 재향군인으로서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Let's shoot some commies.”(빨갱이 놈들 좀 때려잡자.)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Red Forman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것은 바로 “You're like French. They give up before the fight.”이다. 프랑스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패하여 점령당한 것을 두고 비꼬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자신이 그런 처지의 프랑스를 ‘구원’해주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Red Forman 캐릭터는 소위 똘레랑스(Tolerance)가 없는 한심한 미국인의 전형으로 구상된 것은 사실이고,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이 [매트릭스]에서 메로빈지언의 위치를 설정함에 있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 같다.

많은 개인들은 자신에게 무한한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믿고 살아간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유주의의 기본 명제는 바로 ‘선택의 자유’에서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리 선택의 자유는 많지 않다. 정말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kid's story에서처럼 개인에게 남겨진 자유는 자살에의 선택밖에 없을지 모른다. 정말 단순화, 극단화시켜 이야기해보면, 태어나서 부모의 보호 하에 자라다 8살이 되면 학교에 입학하고 20세에 신체검사를 받고 2년 동안 군대에서 썩고 나오면 고시걱정 취직걱정 사랑타령 결혼하고 자식 기르고 직장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방황하다 안드로메다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 요약본 아닌가? 개인들의 삶을 쳐다보다보면 극도의 우울증이 찾아오고 만다. 여기에서 다시 보드리야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7 - Need a fix? 

인트로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많은 이들이 1편에서 Rob Zombie 노래 Dragula가 가득 메우는 클럽을 인상 깊게 바라본다. 예전 Marlon Brando 주연의 Street Car Named Desire(1951)에 재즈 음악이 BGM으로 삽입된 바 있다. 재즈는 당시 주류 대중음악이 아닌 새롭고 전위적인 음악이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그 음악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영상은 또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된다. 매트릭스에서의 메탈 음악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평화롭고 무료하지만 뭔가 균열이 가있는 세계에서 새로운 aura를 분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적’이지 않은 음악을 BGM으로 택함으로서 매트릭스 시상에 부합하는 분위기를 창출해냈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으로 도배를 하는 미국의 TV시리즈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사고를 어느 쪽으로든 바꿀 수 있게 물밑작업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듣는 이에 따라서 모두 반응이 다르겠지만 영화를 기본적으로 부정하고 들어가는 이가 아니라면 BGM은 의도대로 작동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매트릭스의 메탈음악들은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을 우롱하고 일탈을 꿈꾸는 이들의 심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둘도 없는 훌륭한 매체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2편에서 모피어스의 연설 이후 이어지는 Zion의 음악과 춤을 살펴보자. 1편에서 염세적이고 퇴폐적인 클럽과 underground hero의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했다면 Zion의 음악은 기계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인간 레지스탕스들의 아름다운 삶과 육체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일렉 기타든 쇠로 된 드럼이든 일체 사용하지 않고 가죽과 나무로 만든 악기와 드럼을 연주하고 그에 맞춰 모든 수천수만 명이 한 곳에 모여 춤을 춘다. 그리고 그에 오버랩되는 네오와 트리니티의 러브 씬이 더욱 더 열기를 더해준다. 사실 Zion의 모든 이들이 다 향연에 나왔다고 보기에는 힘든 장면이다. (대부분이 젊은 육체적으로 건장한 남녀밖에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만큼 기계에 대비되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땀 냄새 등이 뒤섞여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몸부림의 음악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실제로는 아프리카 토착 음악 혹은 라틴계열의 비트에 비슷한 것 같다.) 

음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매트릭스 안에 있는 이들이든 밖에 있는 이들이든,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이든 music이 이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엇인가. 선뜻 답하기 어렵다면 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것을 기대하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먼저 대답해보자. 개인별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공통적으로는 보통 뭔가 감정적인 변화를 혹은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듣게 된다. 자신이 싫어하는 음악을 듣는 이는 세상에 한명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같은 밴드 멤버들과 편히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놀든 길거리에서 이어폰으로 혼자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든 심지어는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컴퓨터에 재생시켜둔 음악을 들을 때든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은 마약이다’라는 생각이다. 마약의 결정적인 기능 한 가지를 꼽자면 기분이 좋아진다는(high) 것과 중독된다는 것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음악에 뇌신경 하나하나 투자해서 열중하는 것은 마약의 순기능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마약 같은 것이라고 해서 음악이 안 좋다든가 마약이 좋다는 얘길 하자는 게 아니다.) 마약과 음악은 동시에 일탈을 꿈꾼다. 뭔가 아닌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멀어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는 관객들에게 언제 어떤 마약을 줄지 무서우리만치 정확히 계산하고 있다. 마치 매트릭스가 cocoon안의 인간들에게 희로애락과 가상현실을 제공하는 만큼의 현실성을 지니고 말이다.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Rob Zombie의 메탈음악이든, 生과 육체를 열망하는 Zion의 음악이든, 나이트클럽에 흐르는 테크노음악이든, 그들은 모두 일탈을 꿈꾼다. 그것이 아주 조그맣다할지라도.



8 - What do you think I am, a human?
 

The Matrix Trilogy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엄청난 양의 코드와 상상력을 담고 있다. 사실 이 글은 단지 본인이 흥미를 지니고 바라본 것들에 대해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두서없이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본인은 종교적 코드는 의도적으로 배제했으나, 수많은 다른 리뷰에서 확인할 수 있을테니 별 문제 없으리라 본다.) 매트릭스를 감상하고 난 이들은 혼란스럽다. 영화라는 허구에 기반한 매체가 제시한 '현실'을 부정하기에 자신의 삶의 모습이 별로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저건 당연히 사실이 아닐 텐데, 아니겠지, 아닌가? 정도에서 이미 저녁 뭐 먹지? 하는 질문으로 애써 넘어가버린다. Sarah E. Worth는 Matrix & Philosophy에 실린 그녀의 글에서 허구의 역설에 대해 설명한다. 1.우리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만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2.우리는 허구가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우리는 허구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결정적으로 현실에 대한 믿음 혹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뚜렷한 구분이 모호해지고 부적절해 진다는 것이다.[각주:3] 스크린을 앞에 두고 목격한 세계가 스크린 바깥의 세계와 다를 것이라는 불안정한 믿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화려한 액션 뒤에 숨어있는 하이퍼리얼의 경고는 엄중하다. 즉, 우리 스스로가 전개하는 인식 세계 속에 매트릭스가 있다는 것이다. The Second Renaissance를 보고 있노라면 저게 당연히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기계와 몰지각한 인류의 행태에 대해 한없이 안타까워지고 분노를 느끼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미래에 충분히 저런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현재 인류가 이성적으로 삶을 영위해나간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게 아닌가. (현재 이성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열외하기로 하고.) 본인은 여기서 어떠한 해답도 줄 수 없다. Oracle이 네오에게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해답은 개인 스스로 찾아야한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혹은 자유로워야 하는가. 인류가 도구로서 개발한 기계가 인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게 될 것인가. 많은 이들은 매트릭스가 너무 형이상학적인 담론에 빠져들어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비판했지만, 사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 이러한 수많은 의문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는 그 노력 자체가 바로 real이고, 따라서 어쩌면 the one이란 당신일지도 모른다.

* 본 리뷰는 2005년 6월에 처음 작성되어, 2006년 5월 수정됨.
* 삽입된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저에게 없음을 밝힙니다.

  1. 굳이 영어로 풀자면 Zeus out of a machine이 될까. 원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크레인 장비에 올라타 상황을 극적으로 타개하는 장치로 사용되던 '신적 캐릭터'를 의미한다. 매트릭스에서는 말 그대로 '기계 신'이라는 의미 역시 추가된 셈이다. [본문으로]
  2. 위키피디아 Merovingian (The Matrix) 항목 참조. [본문으로]
  3. 『Matrix & Philosophy』(William Irwin) 120p. 123p.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배트맨 2008.06.17 07:39  Modify/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이제서야 읽어보았네요.
    열정과 논리를 차분히 담으셔서 쓰신 흔적이 가득한 리뷰네요. ^^*

    이런 감독이 어쩌다가 <스피드 레이서> 같은 영화를 내놓은 것인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가족 영화라고는 하지만.. -.,-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6.17 09:50 신고  Modify/Delete

      사실 스피드 레이서는 안 봐서 어떻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리뷰들을 종합해보면...그냥 '영상'에만 모든 것을 올인한 수준인 것 같더군요. 브이 포 벤데타 같은 경우도 저는 사실 꽤 재미있게 봤었는데 흥행에는 참패를 했으니;; 스피드 레이서는 언제 한번 '구해서' 봐야겠습니다 ^^;;

    • BlogIcon 배트맨 2008.06.18 01:38  Modify/Delete

      개인마다 영화적인 관점과 시선이 다르기때문에 Muzeholic님께서는 <스피드 레이서>를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좀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워쇼스키 형제 작품이라서 극장에 달려갔건만.. T.T

      <브이 포 벤데타>는 저도 재미있게 관람을 했습니다. 상영관을 나서면서 그 가면이 갖고 싶어질 정도로요. ^^*

  2. BlogIcon 카루 2008.08.21 00:17  Modify/Delete  Reply

    진실의 사막 은 예수가 깨닫기 전 사막에서 40일간 고행을 한 것에서 갖다붙인 이름일 건데요. 뭐 모르지는 않으실 거고 종교 코드를 배제하셔서 그러신 것 같긴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1 00:48 신고  Modify/Delete

      예, 본 리뷰에서는 종교적인 부분은 메로빈지언 이외에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말이죠..) 뭐...제가 리뷰의 궁극오의를 전파할 것도 아니고 말이죠 ^^;; 모든 측면을 다 다룰 수는 없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the desert of the real 부분에 대해 첨언하자면, 확실히 종교적인 코드에서 보았을 때 '사막'이라는 매개는 어쩌면 고난의 사막에서 차용한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매트릭스 영화에서도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기때문에 이 개념 자체가 고난의 사막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