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2005)

MuzeWeek/Culture 2008. 7. 31. 14:33

세상에는 2가지 SF팬이 존재한다. Douglas Adams(더글라스 아담스)의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세계관을 어떤 방식으로든[각주:1] 접해본 사람과, "히치하이커 그게 뭔가효, 먹는건가효? 우적우적"하는 사람이다. 후자는 지금 이 글을 읽고 반성하며, 얼른 2005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를 챙겨보기 바란다. Muzeholic의 경우 영화와 소설 전권을 접해보았지만, 일단 본 리뷰는 영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할 예정이다. (애시당초에 2005년 작품을 지금에서야 끄적이는 이유는, Wall.E의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Marvin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Don't Panic! and don't leave home without it.

소설에선 굵직한 메인 스토리로 총 5권이 존재하는데, 그 중 첫번째 권[각주:2]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우리가 살펴볼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2005)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전혀 새롭게 첨가된 것들도 있고 미묘하게 스토리가 다르게 진행되니, 사실상 re-imagined의 범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원제가 너무 길기 때문에 (역제도 마찬가지) 이 밑으로는 H2G2로 줄이기로 한다. 참고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라는 형식은 보통 배낭여행객을 위한 안내서의 제목으로 많이 이용된다. (애시당초에 H2G2의 제목을 얻게 된 계기도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Europe이라는 안내서를 들고 여행하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더글라스 아담스는 소설의 서문에서 밝힌 바 있다.) 아무튼 다음은 네이버 영화 정보에 적혀 있는 간단한 시놉시스를 참조한 것이다.

어느날, '은하계 초공간 개발위원회' 소속 우주인들은 초공간 이동용 우회 고속도로의 건설을 위해 도로부지에 위치한 지구별의 철거를 결심한다. 지구의 폭발일보직전, 영국인 아서 덴트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포드 프리펙트에 의해 구출되는데, 실제로 포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개정판 작업을 진행중이던 우주인이었다. 이 둘은 이제 히치하이커가 되어, 은하계 대통령 출신인 포드의 사촌 자포드 비블브락스, 그리고 또다른 지구인 트릴리언과 동행하게 된다. 여정을 통해 아서는 지구가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깊은 생각'이라고 하는 슈퍼 컴퓨터가 프로그래밍한 일종의 컴퓨터에 불과함을 알게되는데...

이 시놉시스는 일부러 개그성을 다 배제한 것인지 정말 보기만 해도 재미가 없어지려고 하는데, 뭐 대충 내용이 저렇다는 것만 알아두자. 미리부터 밝혀두자면, 이 영화는 절대적으로 유쾌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Douglas Adams가 실제로 철학이나 양자물리학, 우주이론 등에 대해 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그 심오한 주제들을 영국인들 특유의 개그마인드로 포장해낸 것이다. 어쩌면 우주이론을 철학과 결부시켰기에 그런 유쾌한 발상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부류로는 지구를 지켜라(2003)케로로 중사(ケロロ 軍曹) 시리즈 등이 있겠는데, H2G2에 비하면 유치한 (...SF코메디 자체가 유치함을 기반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 표현도 아이러니컬하지만) 수준이 아닐 수 없다.

Heart of Gold spaceship.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평범한 매트리스 행성 이야기를 해볼까. (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침대 매트리스라는 것은 공장에서 여러가지 자재를 가공하여 출고해서 얻어지는 것인데, 뜬금없이 매트리스 행성이라는 건 뭐지? 그곳에서는 매트리스들이 즐겁게 뛰놀...기보다는 습한 늪지대에 살며, 얼른 뽀송뽀송하게 말려져 다른 행성으로 차출되기를 고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내는거지' 싶을 정도로 황당한 설정들의 향연H2G2(2005)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물론 거의 모든 판타지나 SF 작품들이 허구에 기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력이나 시장 분포 탓인지 대부분이 미국식 헐리웃 센스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정통 영국식 블랙코메디를 2000년대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절대 저예산 영화는 아니다.

H2G2(2005)의 개그는 과학 뿐 아니라 신학 및 철학에 대한 고찰 역시 포함한다. Magrathea(마그레시아)라는 행성에서는 수백만 년 전, Deep Thought(깊은 생각)이라는 슈퍼컴퓨터를 설계하여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해답(the ultimat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을 얻고자 한다. 그러자 Deep Thought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50만 년 후에 돌아오라고 한다. 별 수 없이 50만 년을 보낸 후 다시 돌아간 마그레시아인들의 앞에 컴퓨터가 내놓은 답은 바로 42. 그렇다. 이후 수많은 SF물에서 이유없이 등장하던 숫자 42! 그건 바로 더글라스 아담스가 내놓은 궁극의 해답이었던 것이다. 물론 조크다. 그리고 철학의 궁극적 질문을 두고 이런 장대한 스케일의 개그를 칠 수 있는 능력, 그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영화의 마지막에 Muzeholic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The answer bloody well isn't 42, it's yes." "그 대답은 빌어먹을 42가 아니라, '예'라구요." 그 yes가 무엇인지는 영화를 보시라.

Marvin the Paranoid Android.

다음으로 또 흥미로운 요소라면, Marvin the Paranoid Android(마빈)[각주:3]이라는 우울증에 걸린 듯한 로봇이 되겠다. 사실 정확히 말해 paranoia는 우울증이라기보다 편집증이라는 뜻이니, paranoid android는 편집증에 걸린 로봇이라는 뜻이 되겠다. (물론 편집증이 우울증에서 파생되는 증상이긴 하지만.) 그러면 이 Marvin이라는 로봇은 어떤 로봇인가? 쉽게 소개하자면 의욕 없는 로봇이다. 로봇이 심리적 장애를 겪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것도 Blade Runner(1982)A.I. Artificial Intelligence(2001)에서처럼 뭔가 철학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그럴 듯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냥 '어쩌다보니'하는 식으로 나와버린다.

Marvin의 심리적 스트레스(혹은 우울증)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그가 연결하는 컴퓨터마다 자살해버리는 정도. 이 로봇의 하이라이트는 영화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역시 잊을 수 없는 신학에의 조롱을 이끌어낸다. 그는 이른바 창조주의 마지막 전언이라는 것이 적혀 있다는 곳(그 덕분에 관광지가 되었다는)을 향해 필사적으로 마지막 여행을 한다. 일을 그 따위로 해도 되냐고 따지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가까스로 도달한 그는 창조주의 마지막 메세지를 확인한 후, "I think, I feel good about it." "그래 뭐...괜찮은 거 같군."이라며 그의 생애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창조주의 마지막 메세지란 무엇이었을까?

We apologize for the inconvenience.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런 신에의 조소적 태도는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 나레이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태초에 신이라는 작자가 우주라는 걸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어요." 이 정도면 Douglas Adams의 유머감각이 어떻게 H2G2 전체를 감싸고 있는지 맛이라도 느껴질까?

난 손을 들고 있다, 꼼짝마!

H2G2(2005)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우주와 진리, 삶,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조크로 바꾸어놓는다. 너무 유치하지 않냐고? 혹은 그냥 미친게 아니냐고?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의 해답이 항당 진지하고 뭔가 있어보여야 하는 건 아니지. 너무나 심오해서 그 압박감에 숨이 막힐 정도의 그런 담론 앞에서도 여유로울 수 있는 것, 전쟁이나 질병, 가난의 한가운데에서 노래할 수 있는 영혼, 그것이 바로 인류의 진정한 원동력 아니었던가? 우리가 사는 지금의 현대사회처럼 숨막히는 세상은 또 없었다. 범죄율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집단의 광기 아래 2차례의 대전쟁을 거친 이후에도 사람들은 정치적 신념, 종교적 신념에 기대어 학살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생명은 멸종해가고 있으며 어쩌면 총체적인 파멸의 카운트다운 중인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마약을 하거나, 자신이 광기의 일부분이 되거나, 혹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벙어리가 되려 한다.[각주:4] 이런 현실 앞에 당신은 웃을 수 있는가?

Hitchin' a ride.

필자가 이렇게 코 앞에 들이대니 그렇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웃고 있었을걸? H2G2의 상황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당장,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지구가 '철거'당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더글라스 아담스는 인생에 대한 전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괜히 제목이 The Hitchhiker's Guide(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소유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이 거대한 우주 속을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 히치하이커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물리적으로 우리에게서 떠나간다해서 슬퍼할 이유가 없다. 불확실성의 연속인 이 거대한 세계에 대한 해답을 내놓겠다고 바둥거릴 필요도 없다. 단지 내 곁에 누가 함께 타월을 지니고 있는가,[각주:5] 누가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가가 중요할 뿐. 궁극의 해답이 뭔지 모르면 좀 어떤가. 42가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되는거고, 창조주가 미안해 하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되는거지.

Don't Panic!

이 넓은 우주에서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1. 첫 시작은 1978년 BBC Radio 4에서의 코메디 스크립트 형식이었고, 그 이후 연극, 소설, 만화책, 컴퓨터 게임, TV 시리즈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미디어의 형태를 입었다. [본문으로]
  2. 이 첫번째 권의 제목 역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이다. [본문으로]
  3. Radiohead의 노래 Paranoid Android는 바로 이 로봇을 지칭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4. 이 구절이 궁금하다면 지난 포스트 Laughing Man's Curse를 참조. [본문으로]
  5. H2G2의 등장인물 Ford Prefect는 타월(towel)이야 말로 히치하이커들의 필수품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인 즉슨, 타월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다른 모든 생존에의 필수품은 전부 챙긴 빠릿한 나그네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것.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이렇게 적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