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ilibrium (2002) : Can You Feel?

MuzeWeek/Culture 2008. 8. 19. 16:53

우리는 이제껏 수없이 많은 영화를 봐왔고, 그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형태의 디스토피아를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에서도, Equilibrium (2002)보다 더 철저하고 극악한 것은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 Ultraviolet (2006)도 그랬듯이, Kurt Wimmer의 작품들은 보통 Gun Kata[각주:1]에서 기인하는 스타일리쉬한 액션성, 영상미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놓고는 흥행도 못한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일까.) 하지만 그는 이 영화로 데뷔를 하기 이전 12년간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꽤 내공있는 감독이다. (1995년도에 One Tough Bastard라는 영화를 감독하긴 했지만 중간쯤 짤렸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항상 이퀼리브리엄을 두고 자신의 데뷔작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The Matrix Trilogy와 많이 비교되고는 하는데, 엄격히 말하면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공통점이 있다면 레지스탕스, 그리고 멋진 액션 정도? 그 이외에는 전혀 겹치는 부분이 없다. (저 요소들이 꽤 중요하긴 하다만.)

Equilibrium (2002)

당신은 감정(emotion, feeling)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누군가가 당신이 사랑하는 이를 죽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슬픔이나 분노를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거 괜찮네." 그 미칠듯한 슬픔의 고통을, 분노의 아드레날린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니 말이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그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가 완벽하게 0에 수렴한다면 꽤 쓸만한거 아닌가? 감정의 격화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혹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감정은 인간이 진보하기 위한 마지막 발걸음을 막는 쓰잘데기 없는 유산일지 모르지. 이것이야 말로 니체가 말하는 Übermensch(초인, overman 혹은 superman)에 다다르기 위해 버려야 할 1순위일지 모른다. equilibrium완벽한 평형, 마음의 평정 상태를 의미한다. John Preston은 극단적 분노와 감정의 폭주 끝에 결국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평정'의 상태에 돌입하는데, 이건 니체의 초인이 되는 모습일까? 실제로 Equilibrium (2002)에 등장하는 국가 리브리아(Libria)[각주:2]의 총통(?) 격인 "Father"는 감정 억제에의 타당성을 끊임없이 설파한다. 21세기 초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인류 문명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4번째 세계대전을 겪으면 인류는 확실히 멸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각국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갈등이 없는 사회', 즉 전쟁이 없는 세상을 구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Prozium이라는 화학적 수단을 통해 원천 차단한 세계, 위대한 리브리아다.

bullet in a bible..

Equilibrium (2002)은 이렇게 고의적으로 '감정이 없는 세계'를 구현해놓고, 정작 관객에게는 감정의 폭주를 경험하게 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주인공 John Preston의 파트너였던 Errol Patridge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He wishes for the Clothes of Heaven"의 시구절을 읊조리는 장면이 있다.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하지만 난 가난해서, 가진건 꿈 밖에 없으니
내 꿈들을 당신의 발자락에 펼쳐 두어요
너무 세게 밟진 말아주세요, 당신이 밟는건 내 꿈이니까요.

이 구절은 꽤 cliché[각주:3]가 되긴 했고, 영미권 이외의 관객들에게는 효과가 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꽤 훌륭한 장치로 작용했음은 틀림이 없다. 이 시구가 불러일으키는 감성, 애틋함 혹은 애절함의 이미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Preston의 발자락 밑에 놓여져, 결국 관객들에게만 흘러들어가게 된다. 특히 dream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진보를 위해 감정을 포기한 리브리아라는 곳은 결국 꿈을 꾸지 않는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인류의 이상(ideal)을 말하지만, 그것이 꿈(dream)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비전(vision)이 없다는 이야기고, 그런 사회에 미래란 있을 수 없으니까. (물론 완벽하게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이 존재한다는 자체부터가 허구지만.)

John Preston, a Grammaton Cleric.

감정(feeling)을 망각한 사회, 나에게 있어 그것보다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은 절대로 불완전한 인류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기 있게 한 원동력이며, 또 앞으로의 미래를 형성해갈 비전(vision)이다. 물론 감정은 역사적으로 위험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Adolf Hitler는 이것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으며, 그 결과는 그의 제국 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 뿐이 아닌 수많은 독재자들과 전쟁광들도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감정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한 것은, Equilibrium (2002)에 등장하는 '갈등 없는 세계' Libria(리브리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로지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운영되는 평등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제3제국과 다를바 없는 전체주의 독재국가였다. 전쟁이 없다? 아니다. 리브리아는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그들은 인간 본성 그 자체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명제를 끌어낼 수가 있다. "감정은 저항의 도구다." 비슷한 세력의 집단 간의 충돌에서라면 '감정'이 불필요한 갈등을 고조하는 위험한 매개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저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권력과 그에 맞서는 레지스탕스의 싸움이라면 그 역할이 달라진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갈등 없는 유토피아'를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갈등'이 아닌 '저항'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왜 영화에서 레지스탕스의 리더가 John Preston에게 "약물 제조 공장만 날릴 수 있다면,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겠는가. 감정을 억압하는 족쇄가 풀려버린다면 (물론 그런 족쇄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지만) 그 폭발력은 하나의 정부, 혹은 군대가 통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단순히 체제 전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독재 정권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sabotage(파괴 공작)가 아니라는 뜻이다. V for Vendetta (2006)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었다면, Equilibrium (2002)철저하게 인간 본연의 것, 그 누구도 억제할 수는 있어도 삭제할 수는 없는 것을 되살리기 위한 저항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싸움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숙연했는지 모른다.

이 영화의 세계관이 왜 무서운가 하면, 실제로 감정이 억제된 상태라면 그 괴리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매트릭스에 종속된 인간이 그것이 매트릭스임을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Prozium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인류의 미래가 거대한 전체주의 사회 Libria로 종결된다면 그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그 사회는 근본적 결함을 안고 있기에 분명 언젠가는 몰락할 것이다. 단 하나의 실수에 의해, 사소한 일부분의 균열에 의해 모든 시스템이 와해되겠지. 하지만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그 안에 속한 개인으로서 어떤 감정에의 권리도 박탈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어쩔거냔 말이다. 그런 유산은 절대로 내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without anger...

우리 인류 하나하나는 모두 감정의 사도다. 그것을 의식하고 살지 않을지 몰라도, 혹은 일부러 억제하려고 노력할지는 몰라도, 감정이 없는 합리성이란 끔찍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된다. 그것은 은폐, 왜곡이라는 수단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더 나은 선(the greater good)을 위해 스스로 억제하라는 호소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 불완전하다고. 단지 호르몬에 불과하다고. 더 위대한 인류가 되자고. 물론 감정은 불완전하다. 단지 뇌에서 오는 신호에 의해 촉진되는 화학반응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것에 의존하여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도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은 우리 영혼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이성과 합리적 판단에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듯이, 감정 역시 박탈할 수 없다.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못한다면 단지 미친 인간이 되는 것이지만, 감정이 없다면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니까.

"...without love, without anger, without sorrow..
Breath is just a clock ticking."


"사랑이 없다면, 증오가 없다면, 슬픔이 없다면...
숨을 쉰다는건 그냥 시계침이 움직이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 Equilibrium (2002), 등장인물 Mary의 대사.

...without love...

Bonus : Equilibrium (2002) 전체 스크립트


  1. 별도의 리뷰 Gun Kata : 건카타를 아십니까? (2008.04.29일자)를 참조. [본문으로]
  2. 이건 뭐..말할 필요도 없이 자유(freedom)을 뜻하는 라틴어 liber 혹은 liberum에서 따온 말이겠지. [본문으로]
  3. 왜 그...결혼식 서약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부류 있잖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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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르도르 2008.08.19 19:01 신고  Modify/Delete  Reply

    건카타액션은 최고였죠^^

  2. BlogIcon 웬리 2008.08.19 23:25  Modify/Delete  Reply

    별로 기대 안하고 봤는데 의외로 대박인 영화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19 23:28 신고  Modify/Delete

      전 사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별 감흥 없이 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번 두번 다시 보니 새삼 이 작품의 위력이 느껴지던데요.
      역시..어렸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구요 ^^;;

  3. BlogIcon bada 2008.08.20 00:08  Modify/Delete  Reply

    똑같은걸 봤는데... 왜 얘기하는게 이렇게 다를까요? ㅡ,ㅡa;;; 솔직히 전 걍 그럭저럭 볼만하다...정도 였는데...ㅠ.ㅠ
    트랙백문제는...일종의 필터때문인거 같습니다. Μųźёноliс님 글중에 필터링 되는 단어 같은게 있어서... 이게 다른 툴들과 달리 일괄이라...쩝... 근데 확실한건 아니구요.. 예상이에요...ㅡ,ㅡa;;; 되는건 되고 안되는건 안되는걸 보면 걍 그런게 아닌가 예상~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0 09:22 신고  Modify/Delete

      그...혹시 한 글에 2개 이상 트랙백 달리던가요?
      제가 이 글을 트랙백 걸어놓고, 건카타 리뷰를 또 걸어봤는데 그건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제한이 없다면...흠 =ㅅ= 신기하네요;;

      이퀼리브리엄은 확실히 상업영화인 주제에 흥행도 못했지만 =ㅅ=;;
      그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5 안에 든답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꼭 리뷰를 적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6년(?)이나 미루어져 버렸네요 ( --);

    • BlogIcon bada 2008.08.20 09:24  Modify/Delete

      움..각기 다른 분들의 경우는 한개 글에 여러개 트랙백의 경우나 한분이 각기 다른 글에 여러개 트랙백은 달립니다만...같은 분이 한개 글에 두개 걸어주신 경우가 없어서 저도 잘...ㅡ,ㅡa;;;
      죄송함다...제 블로그가 이상해서 폐가 되네요.. (_ _);
      죄성죄성...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0 09:27 신고  Modify/Delete

      그렇군요...흐;; 아니 왜 bada님이 사과를 ^^;;;
      그냥 뭐, 댓글로 왔다갔다 하면 되죠~
      그래도 이놈은 트랙백 갔으니 다행입니다. ㅎㅎ;

  4. BlogIcon bada 2008.08.20 15:12  Modify/Delete  Reply

    생각해봤는데...보통 잘 모르거나 혹은 별로 평이 안좋은 영화들 중에 왠지 내 마음엔 꼭 드는 그런 영화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가 Μųźёноliс 님에게 그런 영화인 모양입니다. 곰곰히 꼽아보니 저도 그런 영화가 몇개 있더군요...ㅎ

    아참. 글고 제가 이 영화 트랙백을 안보내는 이유가 예전 건카타글에 보내기도 했었구...제 리뷰가 워낙 허접해서 이런걸 두개나 걸기 죄송해서에요~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0 15:23 신고  Modify/Delete

      사실 이퀼리브리엄은 전체적인 평이 안 좋다기보다는..'흥행을 못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마케팅부터가 '매트릭스는 잊어라' 운운했으니 무슨 깡인지;; 사실 그냥 아무 말 없이 개봉했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건카타의 시초 격인 영화라서 그런지...이른바 cult film의 반열에 올라서 =ㅅ= 주기적으로 꼭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울트라바이올렛이 더 안습;;)

      ㅎㅎ 그리고 트랙백은 괜찮습니다. ^^;;

  5. BlogIcon 까스뗄로 2008.08.21 00:16 신고  Modify/Delete  Reply

    뜬금없이 크리스찬 베일이 숨겨줬던 보더 콜리 강아지 생각이 나네요. 제 딴엔 가장 떨렸던 장면이라... (쿨럭.) 디스토피아 영화 중에도 참 특이한 부류였죠. 개개인의 감정이 통제될 수 있다는 게 황당한 발상 같았지만... 역으로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이만큼 감정을 중시하고 감정에 연연하는 영화도 드물겠다 싶어서요.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1 00:31 신고  Modify/Delete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감정을 완벽하게 억제한다는 발상도 쉽지 않았을텐데요. (커트 위머가 꽤 상상력은 좋은 것 같은데..참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 왜..메리가 숨어 있던 지하 챔버에 프레스톤이 다시 찾아가 전축으로 베토벤을 틀 때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이퀼리브리엄은 제 생각에 텍스트도 꽤 훌륭했고, 영상미나 액션은 말할 것도 없는데..그러다보니 오히려 애매해서 흥행에 실패한 경우 같습니다. 특히 건카타라는 액션으로만 기억되다보니 나머지 서사 진행 부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니까요.

  6. BlogIcon 맨큐 2008.08.23 21:06 신고  Modify/Delete  Reply

    음, 6년 전에 개봉한 영화인가요?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안 본 영화인 듯 싶네요. ^^;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3 22:55 신고  Modify/Delete

      아마 북미개봉이 2002년 말이었고...한국에서는 2003년 상반기에 개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뭐 안팎으로 흥행에 실패해서 묻혀버리긴 했습니다만, 오히려 극장에서 내린 후에는 꾸준히 평점이 상승(?)하는 그런 매니아 영화 중 하나가 되었죠. 한번 보시면 재미있을거예요 ^^;;

  7. BlogIcon 신어지 2008.08.24 20:24 신고  Modify/Delete  Reply

    그 놈의 <매트릭스> 운운하는 카피 때문에 오히려 피를 본 영화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 BlogIcon Μųźёноliс 2008.08.24 21:20 신고  Modify/Delete

      그러니까요. 이건 뭐...매트릭스도 그렇고 이퀼리브리엄도 그렇고 다 액션만 보고 나온 놈들이 광고를 만들었는지..ㅉㅉ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