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 Roll On With Our Heads Held High.

MuzeWeek/Editorial 2011. 5. 16. 20:53

몇 년 만에 새로운 글을 쓴다면서 이런 넋두리라는 것이 한심하지만, 역시 본성은 별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지는 일이라면, 내 운명의 짝이 (적어도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왔었던 것이겠지. 그녀는 어둠 속에 괴로워하고 있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마 제대로 알지 못했겠지. 나 역시 그것을 의심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내가 평생을 찾아다니던 그 무엇인가의 향기가 스쳤다. 틀림이 없었다. 내가 시작부터 기억하고 있었던 찢겨져나간 내 영혼의 향기였다. 그렇기에 절대 놓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내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그런데 역시 그녀는 심연을 들여다보고 만 것 같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쳤고, 나는 거짓 휴식을 제공하는 임시피난소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라도 이용가치가 있었으면 다행이었을까. 결국 난 아찔해지는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이 시련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에 잔인할 정도로 버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현명한 삶을 살고 싶다는 얘긴 아니고.) 난 단지 내 운명의 짝과 손을 잡고 세상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은 나 혼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흔들려 있던 시기에 다가와 더 큰 혼돈만을 남기고 떠난 그 향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한 조각씩 찢겨져간 내 영혼을 기억으로나마 뇌에 그리며 살아가야겠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쳐야겠다. 이제 내겐 남겨진 영혼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발악해야겠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지만 하늘 높이 고개를 치켜들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야겠다.

도망가야겠다, 품위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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