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 Movie: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

MuzeWeek/Culture 2011. 12. 3. 04:37

= Mr. Smith Filibusters Washington =
 

 
           Frank Capra의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은 지금이야 미국 의회 정치를 그려낸 최고의 수작으로 평가 받고 수많은 미국인들이 손꼽는 고전 중 하나이지만, 1939년 10월 워싱턴 시사회 당시만 해도 반발이 거세었다고 한다. The Washington Press와 국회의원들은 이 영화가 미국 정부의 부패를 그렸기 때문에 반미, 친공산주의적이라고 비판했고, 감독 스스로 자서전에서 밝히길 상원의원 중 몇몇은 상영 중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거나 스크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보면, 미국은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통해 어렵사리 대공황에 대처해나가고 있었고, 유럽은 이미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등의 세력에 의해 막 또 하나의 세계대전이 시작하려는 찰나의 순간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롭게 등장한 소련의 존재와 Comintern의 공작에 서구의 국가들이 극도로 민감해져 있던 시기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소련이 붕괴한 그 시점에서 이 영화를 보기에 의회 민주주의에의 소개와 순수한 열정을 가진 한 인물의 이야기로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영국에서 시발된 의회 정치와 그를 작동시키는 장치들이 어떻게 미국에 정착되어 있는가를 볼 수 있겠고, 둘째로는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소위 ‘미국적 가치’가 정치판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는 감독의 개인적 바람이기도 하지만, 한 명의, 혹은 소수의 의식 있는 자가 어떻게 정치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텍스트가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마치 관객들에게 미국 의회의 기능적 구조나 그 역할을 소개하기 위해 제작된 공익광고 인양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동반한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어떻게 한다든지, 상원회의장의 구조나 보도관행이 어떻다든지, 의사 진행 방해를 의미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의 모습이라든지 말이다.

           솔직히 이 필리버스터만큼 의회 정치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는 드물 것이다. 필리버스터의 어원은 스페인어 filibustero로서 이는 해적(pirate, freebooter)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의회 절차에 있어 “의도적, 계획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의미하는 전문용어(jargon)가 되었다. 필리버스터는 흔히, 질문 혹은 의견진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장시간의 연설, 규칙발언의 연발,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 제의 및 그 설명을 위한 장시간의 발언, 안건 처리의 전제조건으로 제출하는 징계동의안의 제출과 표결 요구, 생략 없는 정식절차의 요구, 신상발언의 남발, 의결정족수 미달 유도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바로 ‘미국적 가치’로 이어지는데, 절차상의 효율성을 해치고 다분히 악용의 소지가 있는 이 필리버스터가 인정받는 가장 큰 근거는 미국 정치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미국적 가치란 단순히 정치적 자유로만 된 것이 아닌, 바로 사유재산의 자유에 놓여있기도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에서 “Taylor Machine”이라 칭해진 이 정치집단은, 한 개인의 강력한 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질서의 근간이 얼마나 휘둘릴 수 있는가에 대한 총체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현대에 들어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서사에 감동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골리앗을 상대로 오로지 민주주의 정치체계에 대한 신뢰와 때묻지 않은 이상으로 맞서는 다윗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마도 감독이 주고 싶었던 교훈이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우리의 현 시스템 내에서 금권정치를 뿌리뽑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지만, 그에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적 장치로서 보완해준다면, 그래서 소수의 정의로움이 다수에게 전달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아마 세상은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것이 한낱 산골짜기 보이스카웃과 같은 영향력이 없는 자일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는 파시즘, 볼셰비즘 등의 자유민주주의와 계몽주의적 전통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도전이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려던 그 시점에서, 아직 서구의 가치와 의회 민주주의의 전통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 가치들 역시 사회적 약자들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필리버스터의 사례를 한국에서 찾아보자면,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케이스임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1964년 야당 초선 의원인 김대중은 본회의 연설에서 동료를 돕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였다. 1964년 당시 야당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공화당 정권이 한일협정 협상 과정에서 1억3000만달러를 들여와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하여 정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공화당 출신인 이효상 국회의장은 회기 마지막 날인 4월 20일 김 의원 구속동의안을 전격 상정했다. 이때 김대중이 의사진행 발언에 나섰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이어진 발언은 회기 마감인 오후 6시를 넘겨 5시간 19분이나 이어졌다. 그는 원고 없이 한일 국교 수립 과정의 잘못된 점, 김준연 의원 구속의 부당성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결국 구속동의안 처리는 무산됐다.[각주:1]

           이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은 대중적 인지도와 박정희 정권의 관심을 동시에 얻게 된 셈이다. 대한민국의 필리버스터 최장기록은 1969년 신민당 박한상 전 의원의 것으로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10시간 5분 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각주:2] 하지만 전자의 사례가 더 기억되는 것은 물론 김대중이 후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직을 수행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성공한 필리버스터”였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그의 연설이 다른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정희 정권과 공화당 측에서 물러선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그 일화는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정치 인생과 대한민국의 의회 민주주의에 있어 꽤나 묵직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덧붙이자면, 대한민국에서는 1973년 국회법 개정을 통해 의원의 발언 시간 제한 규정이 생겨났으며 현행 국회법에서 국회의원의 통상 발언 시간은 15분, 의사 진행 발언은 5분 내로 제한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는 규정은 물론 효율적 의사 진행과 국세낭비를 막기 위함이겠지만, 그 시기가 유신 헌법이 발효된 직후인 73년이라는 사실과, 아직까지 수많은 의회 민주주의 채택 국가들(영연방, 미국 상원, 프랑스 등)에서 필리버스터가 제도적으로 허용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표현의 자유라는 의회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 보호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미국 필리버스터의 역사적 사례를 보자면 대표적으로는 1957년 James Strom Thurmond의원이 1957 민권법안(Civil Rights Act of 1957)을 저지하기 위해 24시간 18분간 아이러니컬하게도 독립선언문, 권리장전,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 등을 낭독하며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바 있다.[각주:3] 1964년에는 남부의 민주당 의원들이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75시간동안 진행하여 1964 민권법안(Civil Rights Act of 1964)을 저지하려 한 바 있다.[각주:4] 두 케이스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다.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는 의회 내 다수당 측이 nuclear option (혹은 constitutional option이라고도 하며, 헌법에 명기된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절차적 규정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줌)[각주:5], 또는 cloture rule (혹은 기요틴이라고도 하며, 100석 중 60석 이상을 차지하는 소위 “슈퍼60석”을 달성한 경우 언제라도 토론을 즉시 종결할 수 있음)[각주:6]을 통해 막아낼 수 있다. 일종의 무분별한 의사진행 방해에 대한 보완책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2010년 초 필리버스터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일었었다. 현재 미국 집권당인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를 112차 회기에서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리버스터가 공화당에 의해 악용돼 왔다"고 주장하면서 법개정에 의욕을 보였다. 민주당은 올해 1월까지만 해도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를 받지 않고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이른바 슈퍼 60석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에 패해 이런 예외적 특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앞서 상원의 당연직 의장인 조 바이든 부통령은 민주당의 매사추세츠 보선 패배 직후 자신의 보좌진에게 과거 필리버스터 사례를 연구하고, 어떤 제도적 개선방안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등 필리버스터 개정론에 불을 지핀 바 있다.[각주:7]

           사실 오바마 정권과 민주당 측에서 필리버스터에 대해 저런 목소리들을 낸 것은, 오바마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건강보호개혁의 일환으로 진통 끝에 올해 3월 통과된 의료보호법안이 공화당 측의 필리버스터에 막힐 우려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2010년 3월 23일 상원에서 통과된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에서 모든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각주: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안이 필리버스터에 방해 받지 않았던 까닭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서슬 퍼렇게 벼르고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잘못하다간 행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옵션 중 하나인 필리버스터가 철퇴에 맞을 위험을 공화당 의원들 스스로가 의식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1. 김상민. “1964년 필리버스터 DJ 정치터전은 의회”. 매일경제 2009.08.20일자 [본문으로]
  2. 김광덕. “발언시간 제한 36년만에 되살아나는 필리버스터의 추억”. 한국일보 2009.03.05일자 [본문으로]
  3. Caro, Robert. Master of the Senate: The Years of Lyndon Johnson, New York: Knopf (2002). [본문으로]
  4. "Major Features of the Civil Rights Act of 1964". Congresslink.org 2010.09.12 (http://www.congresslink.org/print_basics_histmats_civilrights64text.htm) [본문으로]
  5. “nuclear option”. Wikipedia page. 2010.09.12 (http://en.wikipedia.org/wiki/Nuclear_option) [본문으로]
  6. "Filibuster and Cloture". United States Senate. 2010.09.12 (http://www.senate.gov/artandhistory/history/common/briefing/Filibuster_Cloture.htm) [본문으로]
  7. 고승일. “美여당 대표 내년에 필리버스터 개정". 연합뉴스. 2010.03.11일자 [본문으로]
  8. “PPACA”. Wikipedia page. 2010.09.12 (http://en.wikipedia.org/wiki/PPACA)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