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 Movie: Wag the Dog (1997)

MuzeWeek/Culture 2011.12.12 23:03

= Can the Tail Wag the Dog? =


               Wag the Dog (1997)은 선거 직전 터져 나온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서 헐리웃 영화 제작자, 가수, 의상 제작자 등을 고용해, 미디어 상에서 가짜 전쟁을 만들어내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려 고군분투하는 이른바 스핀닥터(spin doctor)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스핀 닥터란 일종의 선거 전문가 혹은 PR 컨설턴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미디어의 눈을 가리거나 다른 곳으로 돌려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미디어의 인지를 조작함으로써 그 후보자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미디어는 민주주의 체제의 엄연한 주인인 유권자들의 눈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조작해 유권자들의 판단능력을 왜곡시킨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개가 꼬리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가 된다면 어떻겠는가, 꼬리가 개를 흔들 수 있을까?

               영화에서 끝까지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 Conrad Brean이 바로 이 스핀 닥터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가 접근하는 Stanley Motss라는 인물은 헐리웃 영화 제작자인데, 하필이면 연예계의 거장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쇼 비즈니스”로서의 미디어 정치의 속성(이미지 정치, 혹은 감성정치)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신과도 같은 창의력과 굽히지 않는 의지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는 대통령과 백악관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따라서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은, 2가지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첫째는, 대통령에 의해 고용되어 그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이 스태프들이 자의적으로 대통령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바로 전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행정부의 수반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미디어를 매개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들의 인식상황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실제로 그러한가? 영화에서는 너무 극단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분명 스핀 닥터들은 존재한다. 이들이 주로 활용하는 기법은 이른바 프레이밍(framing)이라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액자(frame)를 통해 어느 장면을 보게 만들면, 그 액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액자”가 바로 미디어이다. 미디어가 특정 사안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하여 대통령에게 불리한 사건에서 관심을 돌리는 일이 스핀닥터들의 프레이밍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대중이 눈치채기 힘들다. 스핀 닥터들은 또한 국제, 외교 안보 사안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통령의 권위가 도전 받기 쉽고 정보의 원천이 다양한 국내 이슈보다 실생활에 영향은 거의 주지 않는 반면 상징성은 더 크기에 프레이밍이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전쟁”을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스핀 닥터와 프레이밍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본 미디어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정작 “주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스핀 닥터는 대통령만이 고용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영화에서도 등장하듯이, 그의 정적 역시 똑같은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 없던 전쟁을 일으키고, 한쪽에서는 그 전쟁을 끝내버린다. 결국 치열한“정치”의 과정에서 그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이 설 곳은 사라지고, 오로지 프레임 vs. 프레임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Robert M. Entman은 이 현상을 두고 “시민 없는 민주주의(democracy without citizens)”라는 말로 표현했고, 이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그리도 중요시되는 “여론(public opinion)”이 단순히 언론 전문가, 정치 컨설턴트들 사이의 대결과 거래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일 것이다. 본인은 이 현상을 두고 “밀실과 광장의 뒤틀린 형태의 타협”이라고 칭하고 싶다. 아예 시민들의 눈을 가리기보다는, 단지 몇 가지의 선택권을 주어 그 채널만 왔다 갔다 하면서 리모컨을 쥔 자신들이 마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인터넷 언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런 부분이 해소될 것이라 많은 이들이 생각했었지만, 슬프게도 정보의 원천이 많아졌음이 반드시 이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Leon T. Hadar라는 워싱턴의 정책 분석가는 클린턴 정부 시절에 있었던 이러한 “스핀”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주목할만하다. 그는 각기 2번에 걸쳐 1993년의 중동 평화협상과 1997년과 1998년에 걸친 대 이스라엘 정책에 있어 클린턴 행정부의 모습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스핀닥터를 이해함에 있어 적합한 두 가지 사례가 아닐까 싶다. 1993년 9월 13일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ization: PLO)의 지도자 아라파트(Yasser Arafat)와 이스라엘의 라빈(Yitzhak Rabin) 총리, 그리고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한 곳에 모여 중동 평화협상을 진행하였고, 이 모습은 전세계에 TV중계되었다. 클린턴이 가운데 앉고 그 옆으로 각각 아라파트와 라빈 총리가 자리를 했는데, 클린턴의 연설이 끝나자 이스라엘의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와 PLO의 압바스가 뒤 이어 연단에 올랐다. 마지막에 페레스와 압바스가 평화협정에 조인하였고, 미 국무장관 Warren Christopher와 러시아 외무장관 Andrei Kozyrev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상징적으로 보면 이 엄청난 형태의 모습이, 백악관 홍보팀원 단 한 명에 의해 연출되었다고 한다. 백악관 홍보팀의 보좌진 중 Rahm Emanuel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리허설까지 진행하며 이 장면의 보도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였다.[각주:1] 평화협정의 조인 장면을 바라보며 CBS의 댄 래더는 “마침내 우리가 기다렸던 장면이다”라고 흥분해 소리까지 쳤다고 한다. 극적인 외교현장을 하나의 무대로 만들어 미디어가 보도하기에 최적의 상태로 효과를 극대화한 Emanuel의 노력으로, 이 평화협정의 조인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나 Nelson Mandela의 출옥 장면에 버금갈 만큼 전세계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단지 클린턴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는 아라파트와 라빈 총리의 중간에 서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마치 그가 “중동평화회담의 주역”, 혹은 Deus ex machina식의 “평화 중재자”처럼 보이도록 연출된 것이다.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의 중동담당인 Martin Indyk는 CNN에 직접 출연해 클린턴 행정부의 노력을 배가시킬 코멘트를 하는 등 백악관 언론비서진의 역할은 사실상 엄청났다고 한다. 1993년 중동 평화협상의 실질적 수혜자는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러한 PR(public relations)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이는 허니문 시기를 날려먹은 클린턴 대통령에 국정운영에 서투르다는 냉소를 쏟아내던 국내 언론들의 태도를 순식간에 반전시키는 기회로 작용하였다. 이는 이른바 “두 종류의 대통령 이론(two presidencies theory)”에 의해 설명되는 외교안보 사안에 있어서의 대통령의 상징성을 빌어 도전 받기 쉬운 국내 이슈들로부터 대통령의 인기를 구제하려는 가장 전형적인 스핀(spin)의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당시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이른바 “지퍼게이트”가 터져 나오기 이전이고, 굳이 스핀이 필요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Hadar의 다른 저널에 등장하는 즉, 1997년에서 1998년에 걸친 클린턴 행정부 후기의 중동정책에 있어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1994년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아라파트(Yasser Arafat)와 함께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던 이스라엘의 Yitzhak Rabin총리는 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의 극우급진주의자 Yigal Amir에 의해 암살되고 만다. 이후 페레스가 잠시 바톤을 이어받았지만, 결국 강경파인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정권을 잡게 되고, 이로서 1993년의 평화협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려는 찰나였다. Hadar에 의하면 클린턴 행정부의 이른바 “이스라엘에 강경하게 나가자 (Let’s-Get-Tough-With-Israel)” 시나리오는 1997년 후반기에 시작되었지만 얼마 안 있어 1998년에 네타냐후의 승리로 완벽하게 종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지퍼게이트가 터져 나오는 시기이기 때문에 클린턴에게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동기가 있던 시절이기도 하다. 따라서 클린턴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네타냐후 정부가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중동 평화 협정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재검토하겠다는 요지의 압력성 발언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통해 전세계에 공표하였다. 이스라엘을 향한 최후통첩과 답변을 위한 마감 기한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발언도 이어졌다.[각주:2]

               
그러나 본격적으로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져나오자, 미국 내 유태인들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유태인과 이스라엘을 위해서도 좋겠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The Wall Street Journal (WSJ)과 같은 보수 색을 띤 언론뿐 아니라 William Safire 등의 칼럼니스트들도 나서 클린턴이 이스라엘을 배신했다며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특별 검사(the Independent Counsel) Kenneth Starr에 의해 르윈스키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고, 또 같은 시기에 인도의 핵실험 문제가 터져 나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위협받게 되자 더 이상 클린턴 행정부는 대외적인 요소를 유리하게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클린턴은 더 이상 네타냐후를 압박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수세에 몰리게 된다. 최후통첩이나 마감 기한도 어느새 흐지부지해지고, 평화협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동시 청원하는 형태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강경하게 대처하려던 클린턴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반대로 아라파트 측에 압력을 넣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데미지를 최대한 방어해내기 위해 스핀닥터들이 취한 전략을 살펴보자면, 일단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측에서 미리 이스라엘 신문에 정보를 흘려 네타냐후의 미국 방문이 미국의 조건에 대한 승인의 의미가 담긴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는 동시에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노력이 네타냐후로 하여금 다소 타협적인 입장으로 변화하도록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홍보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스라엘 서안지구에 있어 철군규모가 아주 근소하기는 하나 실제로 몇% 증가했음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인해 이후 탄핵의 위기까지 몰렸던 클린턴 대통령은 코소보 사태를 계기로 구사일생하게 된다. 그가 위증 등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미국의 군 작전통수권자를 탄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미국 의회의 결정이었던 셈인데, 이 역시 분명 그의 홍보팀과 스핀 닥터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Hadar는 외교 및 군사 분야에 있어 클린턴 행정부가 어떻게 언론과 소통해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허상”을 만들어내는 수준은 사실상 불가능에가깝지만, 이렇게 얼마든지 시민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는 법도 없다. 김용호 교수는 미디어와 정부 사이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역설한 바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이러한 양상을 깨닫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언론이 프레임 되지 않은 진실만을 보도하는 것은 아니며, 혹은 언론이 언제나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의 입장에서 그 스핀을 꿰뚫어볼 능력을 함양하는 이른바 “게임의 법칙”을 익히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지, 개가 꼬리를 흔드는지 정도는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 Leon T. Hadar, “The Picture and the Spin”,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vol. 23, no. 2 (Winter, 1994), pp. 84-94. [본문으로]
  2. Leon T. Hadar, “The Mouse that Roared”,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vol. 28, no. 1 (Autumn, 1998), pp. 78-8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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