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 Movie: Interrogation (1989)
= Interrogation of Human Security =
심문(Przesłuchanie: Interrogation, 1989)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스탈린 치하의 동구권(정확히는 폴란드)을 배경으로, “심문”과 “감옥”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공산주의독재체제 하의 인권유린의 현장을 거짓과 폭압에 저항하는 무력한 개인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의 현재 우리 세대는 우리의 두 눈으로 극단적 잔혹행위들을 목격해온 바가 흔치 않고, 적어도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맹세한 정부로부터 천부인권에 대한 위협을 겪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살고 있다. 그러나 국가이익(raison d’état)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들의 인권이 짓밟히는 그 과정을 지켜보아야 함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우리가 어느 곳에 살고 있든 상관없이, 정부의 존재의미와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되뇌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심문”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 안토니나는, 적어도 그녀가 정치수용소로 납치되어 가서 그 수 없는 시간을 고문과 폭행에 시달릴 정도의 혐의를 지닌 인물이 아니다. 물론, 어떠한 시대에 어떠한 중대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 범죄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녀는 어떠한 고의성 없이,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행위가 음모에 연루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 받은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강압에 의한 자백의 경우 법원의 심리에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되어있다. 공산당에 의한 일당독재 체제 하에 놓인 소비에트 연방, 그것도 자기 스스로가 폭정과 숙청의 선두주자가 된 스탈린 시대의 소위“정치적 심문”이라는 것은 이미 그 진실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간첩행위에 연루되었든 되지 않았든,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러시아 혁명의 뒤틀린 유산과 스탈린, 그리고 나치 치하의 전체주의 폭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관료적 관성에 의한 폭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심문”의 주체가 되는 심문관들은 어떠한가. 처음에는 “소령”과 “중위”가 이른바 “나쁜 경찰, 좋은 경찰” 역할극을 통해 안토니나의 자백을 받아내려는 듯 해 보였다. 소령은 안토니나를 신체적으로 폭행하고, 심리적 극단 상황에 몰아넣어 (예를 들자면 다른 죄수를 총살하려는 것처럼 꾸민다든지) 자백을 받아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중위는 반대로 아우슈비츠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안토니나를 설득하고 회유하려 하였으나 수년이 지나도록 그녀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에 실패하고,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위치 때문에 항상 이중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들은 같은 권력과 같은 지위를 부여 받고도 다른 행동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같은 관료라도 개인적 차이가 분명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극도로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특정 관료 개인의 의지로 그 위치에 기대되는 역할의 행동양식을 바꾸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역시 뚜렷이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안보를 위해 개인의 인권이 희생되는 양상에 주목해보자. 전통적으로 냉전시기까지만 해도 최우선순위는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 있었다. 왜냐하면 국가의 안보가 보장되어야 그것이 보호하는 그 내부 구성원들의 안보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안보가 필요한 것이 국가(그러니까 정부와 사회, 시민들의 통합체)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정권(regime)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뒤틀린 것이다. 이것이 탈냉전 시기에 소위 인간 안보(human security)라고 하여 안보의 대상을 국가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보는 시각이 등장한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John Locke나 Robert Nozick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 구성원들의 생존과 번영,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할진대, 그것이 현재 북한의 김씨 일가가 보이는 것과 유사하게 “정권”의 생존을 위한 목적 그 자체(end by itself)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뇌리를 떠날 수 없는 사례는 단연 1987년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박종철은 1987년 공안 당국에 의해 취조실로 끌려가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추궁 받았으나, 그는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여, 그는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항쟁의 불씨가 됐다. 1987년 중앙일보의 기자 신성호는 한 검찰 간부가 “경찰, 큰일 났어”라고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단서를 잡고 1월14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2단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다음날 당시 치안 본부장 강민창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발표 했다.
박종철군을 부검했던 고려대 의대 황적준(법의학) 교수는 “물고문을 받으면 호흡을 못해 고통을 느끼면서 혈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정신착란과 어지럼증이 나타난다”며 “이로 인해 갑자기 공포감이 엄습해 고문의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지금의 국가정보원)·청와대·검찰·경찰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조작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이하 진실화해위)는 “박씨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1987년 1월14일 박씨가 숨진 뒤 정부가 안기부, 내무부, 법무부, 청와대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최소 두 차례 열어 사건을 은폐·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1 2
두 고문경찰관의 입에서 나온 진실을 알린 사람은 당시 영등포교도소의 간부급 교도관이었다. 그해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숨진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애초 2명의 경찰관(조한경·강진규)를 책임자로 지목해 구속했다. 그러나 사실은 3명의 경찰관(황정웅·반금곤·이정호)이 더 있었으며, 이 과정에 전두환 정권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은폐·조작 사건의 본질이다. 교도소 내 1차 보안 책임자였던 안유 계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종철 사건을 둘러싼 경찰 내부의 음모와 갈등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고문 경찰관들의 면담기록 등 극비사항은 가장 먼저 그의 손을 거쳐 상부로 보고됐다. 그는 남영동 대공 수사단장 등이 조한경·강진규 두 고문경찰관들에게 2억원이 든 입금통장을 제시하는 것도 목격했다. 3
이 사건이 안토니나의 케이스와 다른 점이라면, 물론 권위주의 정권 하이긴 하지만 버젓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련히 군사독재나 전체주의 정권 하에서는 폭정과 인권탄압은 당연한 것이고 딱히 새로운 것이 없다고 여겨버리고 말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놓여있다. 군사정권의 유산을 물려받아 시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정부가 아니고, 만약 진정한 정통성에 기반한 (그러니까,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기반해 그들을 보호할 권리를 이양 받은) 정부가 우리의 인권을 탄압한다면 우리는 정치외교학도로서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앞서 안보의 대상이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만약 그 “개인”이 억울하게 몰린 정치범이 아니라, 실제 테러리스트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구성원들의 안보를 위해 그 개인의 인권을 어느 선까지 제약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다음 사례는 인권 안보(human security)적 차원에서 미국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Guantánamo Bay detention camp)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 정부 산하의 Joint Task Force Guantánamo에 의해 2002년부터 관타나모 만에 위치한 미 해군 기지 안에 설립 운영되고 있다. 관타나모 해군 기지는 쿠바 내의 미국령으로 간주되지만, 미국 법무부가 관타나모 기지는 미국의 사법권이 닿지 않는 지역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조언하면서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국가 안보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은 부시 행정부가 2002년 1월 11일 20명의 수감자를 관타나모로 이송하였다. 부시 행정부는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이 제네바 협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미국 대법원은 2006년 6월 29일 Hamdan v. Rumsfeld 사건에서 이들이 제네바 협정 일반조항3에 명기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다. 4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2006년 7월 7일, 내부 공지를 통해 제네바 협정 일반조항3에 의거해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을 대할 것을 지시한다. 2008년 6월을 기준으로 해서는 수감자들이 미국의 공식적인 적군(enemy combatants)으로 분류되었고 결국 2009년 1월 22일,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관타나모 수용소의 활동을 120일간 잠정 중단하고 연내에 완전히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5 그러나 문제는 2006년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이다. 2005년 당시, UN의 인권 전문가들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이 있었다는 믿을만한 정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맨프레드 노웍 등 유엔 인권 전문가 4명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있는 테러용의자들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여러 번 방문 요청을 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 인권 침해가 있다는 믿을 만한 소식통들의 정보에 근거해 방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6 7
“미국은 알-카타니를 고문했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있는 9/11 테러 용의자를 고문했다고 인정하는 부시 행정부 고위 관료의 첫 발언이다. 수전 크로포드국방부 감찰관은 카타니에 대한 행위는 법에서 정한 고문 요건에 부합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밝혔다. 용의자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감찰관은 심문 방법은 합법적이라고 해석했지만 이를 과도하게 공격적이고 지나치게 지속적으로 사용해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기 때문에 고문으로 본다는 것. 백악관은 반박했다. 페리노 대변인은 고문은 부시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정책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해둔다고 말했다. 휘트먼 국방부 대변인은 직접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특별한 심문기법은 당시로서는 합법적이었다는 언급에 그쳤다. 8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나선 미국 정부가 미국의 생존, 더불어 미국 시민의 안전을 위해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행위를 묵인했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을 무로 자르듯 단정지을 수는 없다. Michael Sandal교수가 진행하는 “정의론” 강의에 참가한 어느 학생의 말마따나, 필요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다. (“You have to do, what you got to do.”) 하지만 국가 안보가 인간 안보에 선행한다는 명제가 항상 참인 것은 아니고, 그가 심지어 테러리스트라 할지라도 천부인권에 대한 보호는 항상 염두 해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던 칸트의 의견이 모든 경우에 있어 옳을 수는 없다고 해도, 그 명제 자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유희연, "끔찍한 인권유린에 통탄", 문화일보 2002.11.09 일자 [본문으로]
- 이경미, “박종철 고문치사, 정부가 조직적 은폐”, 한겨레 2009.06.07 일자 [본문으로]
- 조선닷컴, “박종철 은폐조작 사건 내부고발자, 23년만에 밝혀져”, 조선일보 2010.09.19 일자 [본문으로]
- The Wikipedia, “Hamdan v. Rumsfeld”, http://en.wikipedia.org/wiki/Hamdan_v._Rumsfeld 2010.10.30 검색 [본문으로]
- “US detainees to get Geneva rights”, BBC news 2006.07.11 일자 [본문으로]
- Mark Mazzetti et al., “Obama Issues Directive to Shut Down Guantánamo”, The New York Times 2009.01.21 일자 [본문으로]
- 김선희, “유엔, 관타나모 고문 정보 있어”, YTN 2005.06.24 일자 [본문으로]
- 박성호, “미국, 9/11 테러 용의자 고문 파문”, YTN 2009.01.15 일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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