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 Movie: Bob Roberts (1992)

MuzeWeek/Culture 2011. 12. 6. 03:56

= Bob Roberts says “Vote First, Ask Questions Later” =
 

              Bob Roberts (1992)는 Tim Robbins가 감독 및 주연을 맡아 가상의 젊은 공화당 정치인 의 상원의원 선거 캠페인 과정을 그려낸 일종의 정치풍자극이다. Bob Roberts에서 Bob은 Robert의 친근한 표현으로 사실은 Robert Roberts가 되는 셈인데, 이는 Saturday Night Live (영화 안에서는 Cutting Edge Live로 나옴) 등의 스케치 코미디 쇼에서 좋아할만한 소위 “웃긴” 이름에 해당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는 Tim Robbins가 1986년 SNL에 출연했던 스케치의 Bob Roberts라는 캐릭터에 기초해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선거”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정치적 쇼맨십의 화려한 spotlight 뒤에 가려진 위선, 흑색 선전, 대중 선동, 속임수, 뒷거래 등의 정치의 어두운 면을 까발려 풍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그림은 역시 미국의 ‘선거정치’에 있는데, 우리가 선거철에 목격하는 그 양상과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뭔가 살짝 어긋나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 적나라하고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는 온갖 비방 선전(negative campaigning)과 위선적 포장, 그리고 방해 공작을 펼치는 그 모습이 자유민주주의의 것이라기보다는, 나치즘, 파시즘 등 전체주의 시절, 혹은 광복 이후 정치깡패들이 난무하던 대한민국 초창기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Bob이 하필이면 보수적 반항아(conservative rebel)로 그려진 것도 계산된 것이다. 물론 미 공화당은 유럽의 보수 정당들과 차이를 보이지만, 적어도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엔 “권모술수에 강한 밀실 정치”가 포함되어 있는 편이다. 또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NRA, 군수산업체 등 각종 이익단체들과 곧잘 연계되고 그들의 권익을 미국 시민 일반의 이익에 우선시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Bob Roberts가 Bob Dylan을 연상시키는 folk singer라는 점도 시대의 정치적 배경 차원에서 눈 여겨 볼만 하다.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중 손으로 쓴 카드를 한 장씩 넘기는 방식은 Bob Dylan에 대한 오마쥬다.) 재미있는 사실은, Bob Dylan은 60~70년대를 거치며 민중저항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이 영화의 Bob은 60년대 히피정신에 대한 저항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히피의 자식 세대는 Reagan시대를 지나며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여피가 되었고, 새로운 Bob은 그들의 아이콘인 셈이다. 시민들은 Bob이 선전하는 국가, 기독교, 가족의 가치를 소비하고, 일부 극성팬(?)들은 마치 파시스트의 전투대처럼 몰려다니며 그를 위한 리 오스왈드(Lee Oswald), 혹은 잭 루비(Jack Ruby)가 된다. 실제로 영화에서 Hitler에 대한 언급이 2차례나 있었으며, 그의 지지자들이 입고 다니는 트렌치 코트는 역시 괴벨스나 친위대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미디어와 자본주의에 지극히 밀접한 미국민주주의의 선거과정의 ‘민주성’과 ‘비민주성’을 동시에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선거과정의 비민주성이란 선거자금의 불투명성, 비방 선전, American Hero로의 위선적 조작 등에서 쉽게 알 수 있고, 민주성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중에의 선동”에 있다. 영화에서 Bob에 대항해 캠페인을 벌이는 상원의원 Paiste는 이를 감정의 정치(politics of emotion)라는 어구로 설명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대중에 의한 선택”이 어떻게 하면 양날의 검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정의롭지 못한 이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휘어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을 믿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주체로서 시민들이 거짓 선동과 감정에 기반한 표결을 피해갈 판단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리라.

              사실 Bob Roberts의 사례를 현실에서 그대로 찾기는 쉽지 않다. 상대방과의 “진흙탕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혀질 것이며, 성공한다면 웬만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그 실상이 드러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지속적으로 상기되던 것 중 하나는 1920~30년대 독일에서 나치정당이 권력을 잡아가는 그 과정이었다. 독일의 나치즘은 이미 1920년대 무솔리니에 의해 정형화 되어가던 파시즘에 더해 민족, 인종,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와 희생양 설정이 병행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중 대중에 대한 선동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먹혔던 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한 패배감과 전쟁보상금, 대공황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감에서 기인한 대중의 분노를 집중시킬 “희생양”의 설정이었다. 그 희생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는 물론 유태인이었고, 둘째는 바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이었다. (후자는 어쩌면 당연할 것이, 파시즘 자체가 공산주의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 형태 역시 크게 2가지, 패망음모론(Dolchstoßlegende, Stab-in-the-Back Legend)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Reichstag fire)으로 나타난다.

              패망음모론, 혹은 Stab-in-the-Back Legend는 전간기 독일의 유명한 우파적 논리였다. 독일 제국의 패망과 국가의 “애국적 부름”에 응답한 국민들에 실망을 안겨준 것을 정치인들의, 혹은 군 사령부의 무능력이 아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유태인들에 의한 내부 공작의 탓으로 돌리는 요지다. 말 그대로 그들이 자랑스런 독일군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것이다.[각주:1] 이는 독일의 유명한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Nibelungenlied, Song of the Nibelungs)의 주인공 지그프리트가 등 뒤에 칼을 맞고 죽는 것에 독일제국의 패망을 비유한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러한 “애국적 전설”을 믿고 싶어하는, 아니 믿어야만 하는 1차대전 참전용사들이 나치당에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히틀러는 이후 유태인들에 대한 인종학살,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숙청하는 것을 이 논리를 통해 정당화할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the Reichstag fire 역시 마찬가지지만, 패망음모론과는 달리 히틀러와 나치 정당이 직접적으로 정권을 쥐게 된 계기가 된, Bob Roberts와 비교하자면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실려가 하반신이 마비되는 그 사건에 해당한다.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은 1933년 2월 27일 베를린 소재 제국의사당 건물에서 자행되었으며, 히틀러는 사건 직후 이가 Communist Party의 소행이자 그들의 반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선언한다. 힌덴부르그 대통령으로부터 비상령에의권한을 부여 받은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정적들을 소탕하기 시작했고 독일 국민들 역시 공포에 떨면서도 그 과정을 지지하였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약 17%의 지지를 얻고 있던 Communist Party가 의회에서 사라짐으로 인해 1933년 3월 5일 진행된 의회 선거에서 나치 정당은 33%에서 44%로 지지율을 올릴 수 있었고, 8%를 획득한 German National People's Party와의 연합을 통해 52%의 절대다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각주:2]

              비록 나치와 히틀러의 사례는 이미 수십 년 전의 것인데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 권력 투쟁과정이 스탈린, 혹은 북한의 김씨 일족 등 공산주의 권의 그것과는 다르게 대중의 지지에 기반해 부상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은 사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진보된 민주주의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전체주의적인 나치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어떻게 독일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가를 검토해보는 것은, 분명 우리 현실에 대한 거울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선거정치에 있어 대중에 대한 선동, 혹은 negative campaigning 등의 최근 사례는 안타깝게도 한국의 2007년 제17대 대선 과정에 있어 불거져 나온 BBK 주가조작 사건을 들 수 있다. 김경준이 1999년 설립된 BBK를 통해 주가 조작으로 수백억 원의 차액을 남겨 이를 횡령하였는데, 김경준은 현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제 소유주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먼저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측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이며 ㈜다스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도 이 후보의 차명재산"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각주:3] 이 사건으로 주요 투자자는 물론이고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약 5200여명의 소액투자자들이 도합 수백억 원 정도의 피해를 보았으며, 자살을 한 사람들도 많이 발생하면서 큰 사회적 재난을 일으켰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봉주 의원은 2007년 25일과 26일 법원자료을 인용, "BBK에 대한 이 후보의 법률적 지위가 인정된 것"이라면서 "거짓증언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고 대선후보를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음해성 정체공세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한편 정동영 신당 대선후보의 친인척의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등 맞불작전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는 주가조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신당이 국제 사기 전문가 김경준을 등에 업고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2002년 대선 직전과 같은 김대업식 폭로전으로 불리한 대선판세를 뒤집기 위한 정치공작의 냄새가 짙게 난다는 것.[각주:4] 검찰은 대선 직전BBK관련 혐의가 모두 무혐의라고 발표하였으나 조선일보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50% 가까이가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못한 채, 정치권의 공방은 계속되었다.[각주:5]  그러나 제기된 의혹을 수사해온 특검팀 마저 2008년 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관련된 의혹이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발표하였다.[각주:6]

              그 이후 대중의 관심은 빨리 식어버렸고, 최근 당시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이 BBK의혹이 네거티브였음을 인정했지만 당시의 치열함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BBK의혹을 통해 이명박은 여론조사에 있어 10~20%에 육박하는 널뛰기를 겪어야 했고, 그 반대급부로 타 후보자들의 지지율 역시 변화한 바 있다. 지금 역시 숱한 이들이 검찰의 발표를 믿지 못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고 있지만, BBK의혹에 대한 진실 여부를 떠나 이 사건이 미디어와 여론의 관심을 받으며 선거 진행 과정과 지지율 변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굳이 BBK가 아니더라도, 2008년 여름에 터져 나온 미국 쇠고기 파동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이 한없이 구설수에 올라야 했던 이유 중 하나에는, 선거 과정에 있었던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그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에 있어 대중의 판단력은 필수불가결하면서 동시에 선전과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한 요소이다. 물론 의혹이 있다면 제기되어야 하고, 시민들은 그것의 해명 과정을 지켜볼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정치의 속성 중 하나인 권모술수가 대중의 판단력 그 자체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것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1. “Dolchstoßlegende”, Wikipedia page, http://en.wikipedia.org/wiki/Stab-in-the-back_legend, 2010.10.01 검색. [본문으로]
  2. Palmer, R. R., Joel Colton, and Lloyd Kramer, A History of the Modern World Vol. II: since 1815, 10th ed. (Boston: McGraw Hill, 2007), p. 817. [본문으로]
  3. 박정훈, “허무 개그 결론난 BBK 의혹”, 동아일보 2009.05.29 일자 [본문으로]
  4. 김성곤, “불타는 'BBK', 대선전 메가톤급 변수로 떠올라”, 아시아경제 2007.10.26 일자 [본문으로]
  5. 정지우, “BBK 수사발표→반박→재반박 ‘공’은 법원으로”, 파이낸셜뉴스 2007.12.07 일자 [본문으로]
  6. 최원규, 이길성, “BBK… 다스… 상암DMC… 이당선자 모두 무혐의”, 조선일보 2008.02.22일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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