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 Movie: Eva Perón (1996)

MuzeWeek/Culture 2011.12.13 23:40

= Don’t Cry for Eva Perón, Argentina =


               Eva Perón (1996)은 The True Story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을 만큼, 에바 페론(Eva Perón)과 후안 페론(Juan Perón)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의 모습을 아르헨티나인들의 시각에서 그리려 노력한 영화이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아르헨티나인들의 인식 속에 남겨진 에비타(Evita)와 페로니즘(Peronismo)의 단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론이라는 이름이 아르헨티나에 남긴 유산은 대단하다. 혹자는 그들이 진정한 빈민의 구원자라고 하고, 반면 다른 이들은 포퓰리즘(populism), 파시즘(fascism)으로 그들을 수식하기도 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여러 학자들이 정의한 Peronism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권위주의적 성향을 지닌 중앙집권 정부. 2) 외세로부터의 자립. 3)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조합주의적 형태의 정치경제체제. 4) 민족주의적 정서와 사회민주주의의 결합. 그런데 이것들은 전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파시즘과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Juan Perón은 Benito Mussolini를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Peronism이 Italian Fascism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이다. 포퓰리즘이란 민중(the people)과 엘리트(the elite)를 구분하여 일반 민중이 원하는 바를 반영하고 충족시키려 하는 정치이데올로기로, “인민주권 회복”과 “감성 자극적 선동정치”, 그리고 “적자재정”으로 그 특징이 요약되는 인기영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파시즘이 포퓰리즘적 요소를 통괄하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페로니즘에 있어서의 포퓰리즘이 특이한 이유는 바로 에바 페론의 불우한 과거사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사회적 스펙트럼 상 빈민층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르헨티나 안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속하며 살아왔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인들이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생아이기도 했고, 여성의 정치참여권이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던 시절 여배우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가 일약 권력의 중심부로 떠오르면서, 그녀의 열정과 후안 페론의 정치적 성향이 맞아떨어져 이른바 “빈민층의 구세주”라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그 원동력으로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에바 페론과 후안 페론의 카리스마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Tomás Eloy Martínez와 같은 이는 에비타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총체적 개념이 없을지언정, 파시스트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Peronism의 포퓰리즘적 성격은 그녀가 살아온 환경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이 빈곤층에 속하던 아르헨티나의 일반 대중들은 에비타와 후안 페론의 이런 포퓰리즘적 카리스마에 말 그대로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되고, 그들의 정치적 기반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에비타의 카리스마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열정에 감동하면서도 동시에, 지울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대중의 전폭적 지지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페로니즘이 그렇게 닮아있는 파시즘이나 나치즘 역시 대중의 지지에 기반해 있던 일종의 “대중 독재”에 해당하지 않았는가.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에 기반한다는 속성 이외에는 그 어떠한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일관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한 국가의 정부라는 것은 정당이나 이익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도 빈민들의 이익만을 대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국가 안에 존재하는 모든 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정책을 수립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포퓰리즘은 단순히 집권 그 자체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에 문제가 된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고립주의와 맞물려 포퓰리즘은 그들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흠을 남기게 된 셈이며, 비록 현재까지 아르헨티나인들의 마음 속에 에비타는 성녀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산이 달갑지만은 않다. 대중의 의지가 엘리트들에 의해, 혹은 시민들 각자의 개인성에 의해 조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이 될 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포퓰리즘은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고 이른바 Populist socialism은 현대에 있어서도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목격할 수 있다.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현재까지 집권중인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휴고 차베스(Hugo Chávez)와 그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Bolivarianism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베네수엘라는 쏟아지는 오일머니로 국민소득이 서독(西獨)과 비슷했던 부국이었다. 돈이 넘친 정부는 1990년대까지 외국산 자동차와 위스키에까지 보조금을 줬다. 국민의 70%가 빈곤층인 나라에서 흥청망청 자신들에게 세금을 써대던 중산층과 기득권층은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1999년 휴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것이다. 그랬던 베네수엘라에 2010년 5월부터 신차 공급이 중단됐다. 달러가 부족해진 정부가 국내 자동차 조립공장들에 부품을 살 수 있는 달러를 공급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외화가 빠져나간다며 기업들의 해외 배당도 중단시켜버렸다. 베네수엘라의 부패지수는 지난 2001년 세계 69위에서 2008년 158위로 급락했다. 차베스 집권 첫해인 1999년 베네수엘라의 살인사건 사망자 수는 6000명 선이었지만 최근에는 1만3000명 선으로 폭증했다. 카라카스의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130여명으로 전쟁 중인 이라크의 바그다드 다음으로 위험한 도시가 됐다. 서민은 범죄에 고통받고, 중산층은 이념에 고통받고, 돈 있는 상류층은 미련 없이 미국과 파나마로 떠나고 있다.[각주:1]

               물론 차베스가 포퓰리스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고, 자신 스스로는 포퓰리스트가 아님을 피력하고 있지만, 그가 내세우는 Bolivarianism의 요지는 페로니즘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점에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Bolivarianism은 19세기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이끌어낸 베네수엘라의 장군 Simón Bolívar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차베스는 자신을 볼리바르식 애국자(a Bolivarian patriot)라고 칭하며 볼리바르 장군의 이상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경제적 주권 (반제국주의) 2) 국민투표(referendum) 및 일반투표(popular vote)를 통한 일반 대중들의 풀뿌리 정치참여 (참여민주주의) 3) 경제적 자급자족 (식품, 내구소모재 등에 있어) 4) 애국적 봉사에 대한 국가윤리 확립 5) 베네수엘라의 엄청난 석유 수익에 있어 공평한 분배 6) 비리 척결.

               차베스 자신은 스스로를 이 Bolivarianism의 추종자라고 말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이나 정적들은 이를 차베시즘(Chavismo)이라 부른다.[각주:2] 차베스는“Bolivarian Revolution”을 정치적 구호로 내걸고 자유시장 및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반대하고 준사회주의적 소득 재분배와 사회복지 시스템을 내세웠다. 그가 1999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새 헌법에 대한 국민 투표가 1999년 12월에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1999년 베네수엘라 헌법은 전체 인구의 80%에 육박하는 찬성을 얻어 인준되었다.[각주:3] 차베시즘에 대해 The Boston Globe는 2002년 그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쿠데타가 발생했던 시기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기도 하였다. “차베시즘은 몇몇의 군사 장교들이 차베스를 끌어내리고 비즈니스맨 대통령을 내세우려고 한 시도에 대해 대중들의 분노를 폭발케 했으며 카리스마적이고 대립을 일삼는 그들의 대통령에게 다시 권력을 주게끔 하였다. 차베시즘의 현상은 거의 종교적 양상을 띄었다.”[각주:4]

               사실 최근 들어 부활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은, Peronism등의 전통적인 포퓰리즘보다 적어도 파시즘적 성격은 덜하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자급자족을 내세우는 조합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지 우파에서 좌파로 기울었을 뿐 그 본질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 사례로는 2006년 당선되어 현재 볼리비아(Bolivia)의 대통령을 지내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 Ayma)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는 Movimiento al Socialismo (MAS) 출신으로 스페인 정복 이후 470년 이래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이다. 2005년 12월 18일, 84.5%의 투표율을 보인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모랄레스는 53.7%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각주:5] 2년 반 이후 그는 이 “다수”의 지지를 더욱 현격히 상향시켰다. 2008년 8월 14일의 국민 소환 투표에서는 67.4%의 지지율로 다시 우위를 지켰다.[각주:6] 모랄레스는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 다시 63%의 지지를 얻어 2번째 임기로 접어들었다.

               모랄레스는 사회주의운동당(Movimiento al Socialismo, 약자인 MAS는 스페인어로 more의 뜻)의 지도자이다. 사회주의운동당은 여러 단체와 함께 콜롬비아의 가스 갈등이나 2000년 코차밤바 시위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은 볼리비아에서 "사회주의 운동"으로 통칭된다. 사회주의운동당은 토지 개혁과 천연가스 수입 재분배를 통해 더 많은 권력을 볼리비아 원주민과 빈민에게 돌려주고자 한다.[각주:7] 그는 취임 연설에서 “지난 500년에 걸친 인디오들의 저항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나의 형제들에게 알린다”며 “볼리비아 인디오들에게 수백 년간 이어져온 온갖 차별과 압박의 세월은 종식되었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이런 연설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랄레스는 이른바 “인디오 포퓰리스트”에 해당하고, 인디오라는 특정 지지기반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좌파 민족주의를 앞세운 정책으로 빈민층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고 며칠 후 가스와 유전의 국유화를 선언하였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Cocalero Movement(코카 재배자 운동)의 의장 명의를 가지고 있다. 이 단체는 코카 재배자의 조합으로, 볼리비아 중부 Chapare 지역의 코카 재배를 뿌리뽑으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에 반대하는 농민조합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코카 재배자들을 대변하는 그는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1996년 마약과의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모임에 참여하였다. 모랄레스는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유럽으로 건너가 코카 잎(coca leaf)과 코카인(cocaine)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는 마약밀매자가 아니다. 코카 재배자일뿐이다. 우린 자연의 산물인 코카 잎을 경작하는 것이지, 그것을 코카인으로 정제하지 않으며 안데스 문화 그 어디에도 코카인이나 마약이 포함된 적이 없다”고 역설했다.[각주:8]

               이렇게 최근의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은 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었고, 이른바 the people의 범주는 전세계적인 세계화의 물결에 대항하는 이들 전부를 포괄하게 된 셈이다. 아직은 이들의 미래를 점치기에 이른 시점일 수도 있으나, 한가지 확실한 점은 정부가 엘리트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빈민들에게만 호의적인 정책을 펼쳐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어야지, 물고기만을 건네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복합 상호의존이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급자족의 환상에만 빠져있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1. 조의준, “[특파원 현장 르포] '차베스 포퓰리즘'에 신음하는 베네수엘라 [2]”, 조선일보 2010.05.28 일자 [본문으로]
  2. Greg Morsbach, “Chavez opponents face tough times”, BBC News 2005.12.06. [본문으로]
  3. Nicholas Kozloff, Hugo Chavez: Oil, Politics, and the Challenge to the United States, (Palgrave Macmillan, 2006), p. 94. [본문으로]
  4. Mike Ceaser, “Chavez followers stay loyal despite Venezuela Crisis.”, The Boston Globe 2002.12.17. A.33 [본문으로]
  5. “Profile->Victory”, EvoMorales.net, http://www.evomorales.net/paginasEng/perfil_Eng_poder.aspx 2010.11.13 일자 검색. [본문으로]
  6. Zaa Nkweta, “Morales wins referendum but opposition hits back”, 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2008.08.26. [본문으로]
  7. "Chavez acts over US-Bolivia row", BBC News 2008.09.12. [본문으로]
  8. “Profile: Evo Morales", BBC News 2005.12.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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