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 Movie: 秋菊打官司 (1992)

MuzeWeek/Culture 2011.12.17 06:21

= The Story of Qiu Ju =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 1992)는 촌장과의 말다툼 끝에 고환을 발로 걷어차인 자신의 남편에 대한 촌장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임신한 몸을 이끌고 부근 향, 현, 시로 먼 길을 여행하여 공안국 등에 도움을 호소하고, 실패하자 정식 소송 절차까지 밟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과는 받아내지 못하는 어느 중국 시골의 아낙 “귀주”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던 것은 첫째로 관료제의 경직성이고, 그 다음으로 중국 사회에서 “체면”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단지 촌장의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었지만, 결국 영화가 끝나도록 사과는 받아낼 수 없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가만 생각해보면 정의가 실현이 된 듯 아닌 듯, 결국 주인공이 원하던 바는 이루지 못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먼저 중국이라는 환경이라 특이한 케이스가 될 수도 있는 “체면”의 문제를 살펴보자. 촌장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사과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촌장이라는 체면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한국의 이장이라는 존재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중국 시골의 촌장은 그 공동체의 무소불위의 권력이자 얼굴이니 말이다. 우리는 자기를 고소하기 위해 동서로 분주했던 귀주가 출산 중 피를 많이 흘리는 위기에 처하자 결국 발벗고 나서 도와주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만,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결국 그 행위도 촌장이라는 체면을 세우기 위한 것 아니었겠는가. 이 체면의 문제는 아래에서 살펴볼 관료제와도 관련이 있는데, 촌장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귀주를 도와주는 행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음으로 관료제의 경직성에 대해 살펴보자면, 이는 단지 사회주의 체제 하의 중국뿐 아니라 다른 배경 어디에서든 적용해볼 수 있는 보편적 테마가 아닌가 싶다. 귀주는 촌장이 자신의 지위를 믿고 횡포를 부리자 공안에 호소해보려 하지만 향의 공안인 이공안은 촌장과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고, 현과 시의 공안국은 향의 결정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는 수준의 결정만 내린다. 그러자 그녀는 결국 사법 절차에 호소하는데 여기서도 그녀를 성의껏 도와준 시 공안국장이 재판대에 서게 되고, 후에 그녀의 출산을 발벗고 나서 도와준 촌장이 체포되어가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혼란스러워한다. 이는 그녀의 개인적 정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은 형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관료 사회의 protocol이나 처리 절차(SOP)가 태생적, 내재적 경직성 덕에 실제 정의 구현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dmund Burke와 같은 이는 오로지 논리적 이성에 기반해 구축한 제도란 지속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이성의 독재라 부르며 이를 테면 technical knowledge(연역 이성을 통한 지식)와 tacit knowledge(묵시적 지식, 경험과 실천을 통해 얻는 지식)를 구분 짓는다. 관료제란 전자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직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공안과 같은 시골 공안은 촌의 사정과 촌장의 입장, 귀주의 입장 등을 고려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묵시적 지식을 터득하고 있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 결국 이 한 줄에 담겨있다. “귀주는 그녀가 원하던 사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촌장이 체면을 중시하고 이공안이 자신의 돈을 들여서라도 원만한 해결을 이루고자 했음은, Burke가 말한 공유된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제도(institution)의 유지와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귀주의 노력은, 굴하지 않는 정의 구현이라는 연역적 이성(혹은 tyranny of reason)에 기반해 검증된 관습을 허물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던 것일까. 아마 Burke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열려있는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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