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t (2005) : Will I Lose My Dignity..?

MuzeWeek/Culture 2008. 11. 5. 11:04

Rent, the movie.

2008년 9월 7일자로 브로드웨이에서 Jonathan Larson의 뮤지컬 Rent가 12년 만에 막을 내렸다. Rent! 인류가 다른 누군가의 집에 빌붙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울려퍼졌던, "학생! 방값 언제 줄거야"의 압박. Rent는 사실 이 현대사회의 모습과 굉장히 동떨어진 것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그려내는데, 언뜻 봐서는 그 이질성을 눈치채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이 Giacomo PucciniLa Bohème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해둔다면, 왜 조나단 라슨은 이 작품의 제목을 'Rent'라 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 얼마 전 서초동 소재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를 홀라당 태워먹은[각주:1] 그 '라 보헴'을 현대의 시각에서 재창조한 작품이 바로 '렌트'라는 이야기다. 푸치니의 원작은 보헤미안의 시대를 그렸기에 (물론 초연 당시 오페라 관객들의 충격은 그 나름대로 어마어마했겠지만) 가난하고 비참한 예술가들의 삶이 시대상에 잘 녹아들었지만, 엄격히 말해서 Rent의 시대상인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뉴욕의 예술가들에게 보헤미안(bohemian)이라는 수식어는 억지스러운 측면도 분명 있다. 물론 현대에도 춥고 배고픈 아티스트들은 존재한다. 그들 역시 옛 보헤미아의 향수와 낭만에 젖어 사는 것일지, 아니면 단순히 현실에의 정당화일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있긴 하다. 다만 그들을 보헤미안으로 정의하기에는 적어도 '가난함' 이외의 무엇인가가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뮤지컬 Rent가 현대식 보헤미안의 삶을 멋지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Jonathan Larson의 음악이 훌륭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바로 my-soul-is-not-for-sale(내 영혼은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이라는 범시대적 모티프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연계도가 약해보이는 집세(rent)라는 매개가 제목으로 사용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La Bohème이 초연되었던 1896년에 비해 20세기 말의 세계[각주:2]는 자본주의의 절정을 맛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rent'란 도시에서의 생존을 위해 아니 자본주의의 수도라는 뉴욕에서 예술가로서 생존하기 위한 궁극적이신 그분, 돈(money)을 상징화한 매개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제목을 'MONEY' 혹은 '$'라고 짓기는 좀 그렇잖아?) 그러니 여기서 현대의 보헤미안들이란 한 마디로, 자본주의와 상업 자본에 예술혼을 팔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이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보헤미안들이 "We're not gonna pay rent!" "집세 못 내겠으니 배째라!"고 외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이것을 두고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정당한 합리성'을 위반했다며 분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집세는 상징의 매개이기 때문에.

Rent (2005)는 Jonathan Larson의 사망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한둘을 제외하고는 주연급 배역 대부분이 1996년의 원년 멤버로 캐스팅 되었기 때문에 필자와 같이 뮤지컬 Rent를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Mamma Mia! (2008) 리뷰에서 뮤지컬 영화에 대한 소견을 짧게나마 적은 바 있기에 그냥 넘어가겠지만, 자칫하면 유치하고 무안하기 십상인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Rent (2005)만큼이나 맛깔스럽게 소화해낸 작품들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한번이라도 Rent라는 작품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거나, 뮤지컬 영화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 필히 이 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기회가 된다면 원작인 La Bohème을 비교삼아 봐둔다면 그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Jonathan Larson이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될지 예상을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작품 전반을 꿰뚫는 AIDS에 대한 유난히 많은 담론이 존재함은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능하게 만든다. 다만 우리는 그가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걸리는 것도 채 목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음에 안타까워할 뿐.

이 작품을 아우르는 두 가지 큰 요소는 바로 죽음(death)사랑(love)이다. 앞에서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하던 돈(money)은 어디갔냐고? 그게 바로 포인트다. 분명 가난한 보헤미안의 삶이라는 설정은 이 영화를 이해함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라슨이나 푸치니가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하다. 하지만 가난해도 살 수는 있지. 특히나 그 가난이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파생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빌어먹을 HIV가 당신 목숨을 빼앗아 가는건 어쩔 도리가 없다. 언제 죽는다고 선고라도 받는다면 차라리 낫지, 이건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니 그 불안에 잠식되어간다. 당장 내일이 될지, 아니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넌 이미 죽어있다고 한다. 사실 따지고보면 인류의 삶 자체가 죽음을 항상 염두해 두고 있긴 한데, AIDS는 2시간 내외의 뮤지컬이나 영화라는 틀 안에서 그 사실을 강력하게 부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확실하고도 불확실한 죽음. 90년대의 보헤미안들에게 있어 AIDS만큼이나 엄청난 불안을 야기한 요소는 또 없을 것이다. "No day, but today." "오늘이 아니면 안 돼." Rent (2005)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대사는 뭐 일종의 carpe diem[각주:3] 혹은 memento mori[각주:4]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Will I lose my dignity..
Will someone care..
Will I wake tomorrow, from this nightmare..?
난 존엄성을 잃게 될까요
누가 신경 써주긴 할까요
내일이 되면,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New year's eve.

이른바 Life Support라 불리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group therapy(집단 심리치료)가 진행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Will I"라는 곡은, 윗 구절이 가사의 전부다. 한명이 일어나 노래를 시작하면 시간차를 두고 돌림노래가 되는 형식인데, 오히려 그 수많은 텍스트보다 이 짧은 단 3줄의 구절이 그들의 심리를 궁극적으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이 노래가 '돌림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모두 같은 좌절과 불안감에 사로잡혀있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노래를 부른다.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것. 여기서 바로 2번째 요소인 사랑(love)이 끼어든다. '죽음'이 현상, 혹은 진단 결과라면 '사랑'은 방법론인 셈이다. 이 '사랑'에는 글자 그대로 연인끼리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이외에도 커뮤니티에의 소속감이라는 것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 본편에서는 편집과정에서 생략되었지만 원래 Goodbye Love라는 곡에는 파트2가 있다. 막 여행을 떠나려는 Roger가 막아서는 Mark에게 하는 말이 있다. "For someone who longs for a community of his own, who's with his camera, alone?" "그렇게도 커뮤니티를 갈망하면서, 넌 왜 카메라만 들고 다니는데? 그것도 혼자."

Mark with his camera.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죽음을 대신 짊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문 앞까지 함께 가줄 수 있는 커뮤니티에의 믿음. 커뮤니티의 일원 한명 한명이, 그리고 소중한 이들이 서로에게 뮤즈(muse)가 되어주는 곳. 그들은 희망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너무 유치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알거든. 다만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한다. 함께 좌절을 노래한다. 우린 언젠가 죽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고 끊임없이 되뇌인다. 그것은 자기최면의 일종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무책임한 회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 그건 세상 그 누구에게라도 축복이다. 다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 당연시 여겨 그 가치를 모르는거지. 당신은 에이즈 환자가 아니니 괜찮다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는, 상처받은 영혼의 소유자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을 그 사실로부터 피해다니고, 함께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죽어버리기는 너무 억울하잖아. MEMENTO MORI.


There's only us. There's only this.
Forget regret, or life is your's to miss.
우리들 뿐이예요, 이 순간 뿐이죠
후회는 잊어요, 아니면 당신의 인생을 놓치게 될 거예요

No other road, no other way
No day but today.
다른 길도 없고, 다른 방법도 없어요
오늘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1. Rent나 La Bohème 둘 중 하나라도 관람한 적이 있다면 도입부에 난방이 되지 않아 자신들의 작품(영화 스크립트, 악보, 소설 등)들을 난로에 넣고 태우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예술의 전당 화재는 바로 그 씬에서 제대로 무대 컨트롤을 못한 탓이겠지. [본문으로]
  2. Rent가 오프브로드웨이를 떠나 브로드웨이에 발을 디딘 시기는 정확히 La Bohème에서 100년 이후인 1996년의 일이다. [본문으로]
  3. 라틴어로서 "seize the day". "오늘을 잡아라"로 해석 가능하다. [본문으로]
  4. 역시 라틴어로 "remember you will die",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