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범죄 사례를 수집하고 이에 대한 감시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이하 외대연대)의 박완석 간사는 “한국에도 미국의 할렘과 같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우범지역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은 이제 해만 지면 한국인들, 특히 여성들은 함부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경찰조차 접근을 꺼린다”고 말했다. ...외국인 범죄는 초기엔 단순 절도, 폭력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흉폭화, 지능화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범죄(단속) 중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는 2001년에 비해 1.5~2배 이상 늘었고 사기, 위조 등 지능범은 무려 10배 이상 급증했다. 대검찰청의 2005년 범죄 분석 자료에서도 외국인 범죄는 전체 범죄의 0.4%에 불과했으나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는 외국인 범죄 중 1.4%를 차지했고 통화ㆍ문서 위조범죄는 8.4%나 됐다. 특히 자국의 금욕적인 종교생활에서 벗어난 이슬람 국가 출신 외국인들의 성범죄가 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국내 외국인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만든 폭력조직도 생겨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라만파’라는 조직은 러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금품을 갈취하거나 입국 브로커 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전문 보러 가기)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언제부턴가 그들의 몫이었다. 평상시엔 존재조차 없다가 사고로 죽고 다쳐야만 실체가 드러나는 사람들. 경기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로 목숨을 잃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이방인들이었다. 중국동포 전찬석씨(38)는 냉동창고 화재로 이종사촌형 등 친·인척 7명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얼마나 배우고 무슨 일을 했든 한국에 오면 남자는 공사판, 여자는 식당 일이 기본 코스다. 일을 한 만큼 월급을 받으면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내국인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20~30% 적은 급여를 받았다. 몸이 아프면 끝장이었다. 의료·산재보험이 되는 회사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신이 내린 직장’이다. 차별은 죽음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들은 보상 기준이 다르다. 보상을 못 받는 경우도 다반사. 이천 화재 역시 회사측이 인적피해에 대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보상을 장담할 수 없다. 장례를 치르기도 쉽지 않다. 사망한 조동명씨의 외삼촌 강석문씨(68)는 “중국의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비자가 제때 나오지 않아 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는 사고가 일어난 뒤 잠깐 불거질 뿐 금방 잊혀진다. 지난해 2월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3D 업종 대다수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지만 제도 속에서나, 사회적 관심에서나 항상 주변인일 뿐이다. (기사 전문 보러 가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40대 한국 여성의 목숨을 구해내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주인공은 화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배관공 벡투르소노프 카이룰루(33). 배관설비업체 D사 소속 일용직 근로자인 카이룰루는 사고 직전 지하 냉동창고 중앙 통로 부근에서 배관작업을 하던 중 천둥 같은 폭발음을 들었다. ...그는 폭발 직후 근처에 있던 한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빨리 피하라’고 소리친 뒤 자신도 머리 위로 덮쳐오는 불길을 피해 출입구 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이 여성이 불길에 휩싸인 채 넘어지는 모습이 카이룰루의 눈에 띄었다. 카이룰루는 “차마 혼자만 대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작업복 외투를 벗어 불을 끈 뒤 이 여성을 등에 업고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러나 카이룰루는 그제야 창고 안에서 함께 일하던 사촌형 누랄리(41)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카이룰루는 “형이 큰딸 결혼에 맞춰 5월께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자식 결혼도 못 보고 눈을 감았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의 충격에다 형을 잃은 슬픔과 그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결국 그는 이천에 있는 자신의 숙소에 몸져눕고 말았다. (기사 전문 보러 가기)
언젠가, 나의 지인 중 한명이 "외국인 노동자 몇몇이 동네 여학생을 윤간했다"는 요지의 글을 읽었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얻는 정보란 대부분이 그렇듯, 일단 한번 이상은 그 신뢰성을 의심해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나의 첫 반응은 "낚시 즐"이었지만, 실제로 위의 기사로도 확인이 되니 낚시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커진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이건 절대 하루 이틀 전에 생겨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석기시대 때도 어디선가 굴러먹다 온 개뼉다귀 같은 놈들이 무리에 합류하면 어떤 형태로든 마찰이 생겼을 것 아닌가.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아돌프 히틀러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같은 경우는 아주 간단하고 깔끔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싸우자!!"
사실, 아직도 이런 해결법을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밀로셰비치, 히틀러와 같이 의지와 여건만 뒷받침해 준다면 실행에 옮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물리적인 숙청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입국금지, 강제추방, 강제수용 등의 옵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또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는, 세상에는 별의별 미친 놈들이 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린 그들을 주시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행위를 예견할 수 없는 한 미리 세상에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처벌'은 당연한 것이지만, 'over-precaution'(과도한 예방책)은 절대 논의의 대상이 되어서 안 된다. 위에 소개한 3개의 기사를 읽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각각을 따로 봤을 때 느끼는 감정과, 함께 나열해놓고 볼 때의 심정을 비교해보면, 참 미묘하지 않은가.
Rest in peace..
많은 한국인들은 스스로가 소위 Xenophobia(외국인 혐오증)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대부분의 경우 착각에 불과하다. 왜냐면 그것은 '다름'에서 나오는 근본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몇 세기가 넘도록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의 충돌을 경험한 미국이나 중국에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상당한 세월 동안 '한민족'임을 강조해왔던 한국인들에게 어려운 과제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익숙해짐'과 그렇지 않음에 있다. 세계 모든 인종과 문화가 통합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에, Xenophobia 역시 완벽히 사라질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 정도의 문제에 있어서는 분명 개선이 가능하다. 미국과 같은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에 직면해 왔기에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지만, 한국은 분명 그런 면에서 서툰 것이 사실이다. (굳이 인종, 국적의 문제를 떠나 성적 취향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어떤 목적을 지니고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해가든 간에, 결국 한 무리의 인간일 뿐이다.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든, 그들이 타지에서 왔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그들을 처벌함은 그들이 인류의 가치를 져버렸기 때문이지, 그들이 속한 group의 업보 때문이 아니다. 물론, 특수성을 감안하여 그에 걸맞는 예방책을 계획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을 벌하기 위해 우리가 인륜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들의 차이점을 무시하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만 집착하면 안 된다. 결국 그들도 인간일 뿐이고, 오해와 악의에 의해 생기는 충돌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Xenophobia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