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천잰대? : Letter of Stalin to Klement Gottwald.

MuzeWeek/Politics & Social 2008. 6. 25. 21:07
관련 기사 : 스탈린이 '미국 6.25 참전' 유도 (중앙일보)


오늘 아침 별 생각 없이 뉴스 헤드라인들을 둘러보고 있던 도중, 중앙일보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그 제목도 이름하야 "스탈린이 美 6.25 참전 유도". 응? 이게 뭔 헛소리인가 싶어 기사 내용을 확인하고, 첨부되어 있는 영문 원본도 읽어보니 꽤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해당 기사는 링크로 확인할 수 있고, 공식 보도자료 역시 첨부해두었으니 직접 확인해보면 될 것이고, 이 새로운 발견(?)에 대한 Muzeholic의 생각을 간단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

서신의 내용은 체코의 대통령 클레멘트 고트발트가 "소련 니놈이 VETO 행사를 안 해서 UN군이 한국전쟁에 끼어들게 된 것 아니냐!"라는 식의 안 봐도 뻔한 태클을 날린 것에 대한 스탈린의 답변이다.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1. 소련은 미국의 참전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독자적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UNSC의 동의를 얻도록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2. 이번 UN 결의안을 통해 전 세계는 미국의 호전성을 알게 될 것이고, 소련은 그 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선전할 수 있다.
3. 그렇게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면 중국 역시 개입하게 되어 있다.
4. 미국은 엄청난 역량을 지닌 중국을 상대로 고전할 것이고, 운이 좋으면 이 세력구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5. 미국이 쉽게 죽진 않더라도 적어도 제3차 세계대전을 수행할 능력은 잃게 될 것이고, 그 전쟁은 공산권 국가들이 충분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무기한 연기될 것이다.

골자는, "스탈린이 UNSC에 참가하지 않았던 것은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적어도 스탈린이 자신의 우방국 지도자에게 보내는 서신에 그렇게 적어놨으니, 아무 근거 없이 왈가왈부 해오던 것 보다는 훨씬 명확한 단서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정보들 속에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참전 유도'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스탈린이 적어도 한국전쟁 정국에 있어서, 모든 이의 머리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서신이 50년 8월에 발신되었다고 하니,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50년 10월보다 이전 아닌가. (서신은 8월자지만 UNSC 투표가 있었던 것은 그보다 2개월 전인 6월이었으니 참고.) 마오쩌둥이 이른바 PVA(People's Volunteer Army)를 결성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스탈린은 중국의 개입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문판 보도자료의 맨 마지막엔 1949년 10월자 서신 역시 첨부가 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오쩌둥에게 보내는 스탈린의 답문이다.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학자들은 여지껏,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반대했으며 형편없는 외교적 고집 때문에 UN 결의안을 통과되게 내버려두었다고 이야기해왔다. 물론 한국전쟁의 개전 자체에 반대한 것은 사실임을 우리는 마오쩌둥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알 수 있다. 해당 서신을 미루어 유추해보면, 소련과 중국은 모두 1949년 10월 당시 조선인민군의 한국전쟁 수행능력을 의심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북한이 선제공격을 가하면 안 된다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었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북침설을 반박하는 근거로 사용 될수도 되겠다.) 스탈린은 1949년 당시만 해도 KPA(Korean People's Army : 조선인민군)의 전쟁수행능력을 의심했지만, 1950년에 이르러서는 생각이 달라졌던 것일까? (아니면 그 사이에 물량을 잔뜩 뽑아 지원해준 것일까.) 하지만 시작이 어떻게 되었든, 스탈린은 한국전쟁의 발전양상을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발을 묶어두고 있는 동안 동유럽을 재정비할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판단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스탈린 자신은 중국의 무한한 역량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서신에 적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닐까 생각되고 실제로는 칼같은 외교적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이 서신의 내용을 100%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요세프 스탈린은 거의 제갈공명급의 예지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말이지,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변명 아냐?" 우방국 지도자들에게 소련의 외교적 행위에 대한 적어도 일말의 설명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무리 찍어눌렀다지만 실제로 그런 병신짓을 했다면 곱게 넘어갈리는 없으니까.) 미국의 한국전 참전을 통해 소련과 기타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얻을 수 있는 간접적 이익을 억지로 끼워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스탈린이 제3차 세계대전을 심각하게 염두해두고 있었다면 어느정도 이해는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외교적 실수로 인해 미국의 UNSC 승인을 허용한 후에, 중국의 개입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우방국들을 달래는 것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지. "그것이 실제로 외교적 실수에 대한 변명이라면, 왜 선전을 하지 않고 비밀서신을 통한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중국에 있다. 이미 일은 벌어진 형국이고, 중공군이 개입하도록 손을 써놓았는데 그것을 자기 위신 세우겠다고 공개해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또한 소련이 그런 치밀한 계획을 했다는 이야기가 마오쩌둥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것도 없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가설일 뿐이고, 계획적으로 UNSC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논리적인 설명이 아닐까도 싶다. 소련이 아무 중요한 이유도 없이 그런 중요한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니까. 그것이 변명이든 아니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한국은 그들에게 '전략적 중요도가 낮은 지역'일 뿐이었다는 사실(그리고 그 전략놀이의 한복판에 말려들어 수많은 한국인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는 사실)에 씁쓸할 뿐이지만 ...그래도 천잰대? -┏.

2008년 7월 3일자 Post Script :
오늘 문득 든 생각인데, 결국 스탈린의 이 은밀한 계획에서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US_Army> show me the money
...cheat enab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