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Watches The Watchmen?

MuzeWeek/Culture 2008. 7. 29. 19:03

Original cover.

상당히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한 그래픽 노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계기란 이 작품이 2005년 TIME MAGAZINE이 발표한 All-Time 100 Novels(the 100 best English-language novels from 1923 to the present : 타임지가 창간된 1923년부터 현재까지의 영어권 소설 베스트 100)에 뽑힌 유일한 '만화'였기 때문도 아니고, 그 작가가 V for Vendetta로 유명한 Alan Moore였기 때문도 아니다. 정말 우연히, 웹서핑 중 발견하게 된 이 단 한 줄의 글귀가 날 인도했다고 해야겠다. "Who watches the watchmen?" "야경꾼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

실제로 이 작품은 1986년부터 1987년 사이의 연재물이기 때문에 시대 배경 역시 1985년 현재로 잡혀 있다. George Orwell1984를 염두해둔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분명 유사한 모티프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애시당초에 Watchmen이라는 컨셉 자체가 Big Brother와 닮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이 그래픽 노블은 1984와 다르게, 이미 절반을 읽기도 전에 당신의 몸을 전율시키는 그런 슬픈 작품이니까. 일단, 원활한 리뷰의 진행을 위해 간단한 시놉시스 겸 제공되는 소개글을 가져와보겠다. (딱히 스포일러는 아니니 마음편히 읽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Watchmen은 300의 감독으로 유명해진 Zack Snyder에 의해 영화 제작 단계에 있다.)

Watchmen, the movie's on the way.

1985년 10월, 예전 미국을 위해 싸우던 영웅 중 하나인 코미디언(Comedian)이 빌딩 옥상에서 잔혹하게 던져진다. 미국이 나치 혹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울 때,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싸울 때 미국을 위해 싸우던 초영웅들은 이제 그 전쟁들이 끝나자 국가의 관리 하에 들어간다. 법에 구애받지 않고 악당을 처단하는 행위(비질란티즘 : Vigilantism)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많은 초영웅들은 국가의 관리 하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결코 악당을 처단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몇 안되는 남은 영웅중 하나인 로어셰크(Rorschach)는 코미디언의 죽음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낌새를 챈다. 결국 그는 독자적으로 그것을 수사하기 시작하며, 예전에 자기와 함께 싸웠던 영웅들을 찾아다니는데...[각주:1]

Watchmen(1986)에는 상당히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Justice League와 유사한 형태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단 그런 세계관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이른바 '영웅질'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설정.) 어떻게보면 이 작품은, 이 전까지의 이른바 '히어로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패러디 혹은 오마쥬라고 할 수 있겠다. Nite-Owl은 배트맨과 닮아 있으며, Dr. Manhattan은 슈퍼맨, Rorschach는 딕 트레이시, Captain Metropolis는 캡틴 아메리카, Silk Spectre는 원더 우먼, 그리고 Comedian은 조커를 닮아 있다.[각주:2] 알란 무어는 이 수많은 히어로들에게서 그리고 심지어는 villain(악당)에게서, 극도의 인간적 연약함과 오류를 찾아내 부각시킨다. 비슷한 사례로는 Spider-Man 영화 시리즈 혹은 TV-Series Smallville 등이 있겠는데, Watchmen을 보고 나면 피터 파커의 흑화나 젊은 클락 켄트의 삽질 같은건 귀여운 투정에 불과하다는걸 깨닫게 된다. 마스크 속에 감춰진 끝도 없는 인간적 오류, 좌절감, 그 수없이 복잡한 심리를 그렇게 훌륭하게 끌어낼 수 있음은, 역시 V for Vendetta의 Alan Moore이기에 가능했을까.

참고로 TV 시리즈 Heroes의 시즌1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과의 연관성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연관성을 여기서 나열하는 것이야 말로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들어가지 않겠지만, Heroes의 1시즌은 Watchmen에 대한 꽤 흥미로운 오마쥬임에 틀림이 없다. Watchmen은 1980년대에 들어 몰락해버린 히어로들의 세계를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아이러니는 70-8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생명선이 2000년대에 들어서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시당초에 배경이 일종의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 속 80년대 미국이기에 연관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이찌되었든 알란 무어가 상상했던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Heroes는 오히려 Watchmen을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86년 이후 모든 히어로물은 Watchmen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다만 그 미칠 것 같은 어둠과 불편한 진실을,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무리 없을 정도로 여과시킬 뿐.

이 리뷰를 작성하기까지는 꽤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 일단 곧 개봉될 The Dark Knight(2008)Tim BurtonBatman(1989)에 대해 적을 때 상당부분 인용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인용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도 The Comedian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짚어두고 넘어가고 싶었다. The Comedian은 이름과는 다르게 전혀 개그 캐릭터가 아니다. 그렇다고 배트맨 시리즈의 The Joker처럼 섬뜩해서 안 웃긴 그런 경우도 아니고, 그냥 인생이 까칠해서 어찌 보면 안티히어로 적이기까지한 아저씨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캐릭터에 왜 하필 The Comedian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는, 뭐 Harlequin(할리퀸)이나 Pierrot(피에로)를 연상해보면 될 것 같다. 옆에 소개할 한 장의 페이지는 실제 Watchmen Chapter2의 끝부분 중 한 장면이다. 그것을 옮겨보면 이렇다.

Blake understood. Treated it like a joke, but he understood. He saw the cracks in society, saw the little men in masks trying to hold it together... He saw the true face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choose to become a reflection, a parody of it. No one else saw the joke. That's why he was lonely. Heard joke once : Man goes to doctor, says he's depressed, says life seems harsh and cruel, says he feels all alone in a threatening world where what lies ahead is vague and uncertain. Doctor says "Treatment is simple. Great clown Pagliacci is in town tonight. Go and see him. That should pick you up." Man bursts into tears, says "But, doctor... I am Pagliacci."

블레이크(The Comedian의 본명)는 이해했다. 농담처럼 여겼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회의 균열을 보았고, 그것을 붙잡고 있으려 노력하는 마스크 뒤의 소인배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가면 벗은 20세기의 맨 얼굴을 보았고, 그것을 반영하는 패러디가 되고자 했다. 아무도 그 조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뿐. 그래서 그는 그렇게 외로웠던 것이다. 한번 이런 농담을 들은 적이 있었지 : 한 남자가 의사를 찾아가서, 우울하다고 했어. 인생이 너무 힙겹고 잔인하다고. 앞이 전부 흐릿하고 불확실한 이 위험한 세상 속에 자기 혼자 남겨진 것 같다고 말야. 그러자 의사가 말하길,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오늘밤 파글리아치라는 유명한 광대가 마침 이 마을에 왔거든요. 그를 만나면 분명 기분이 좋아질겁니다."

남자는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의사 선생...내가 파글리아치라니까."

The Comedian.

이 단락은 작가가 그의 이름을 왜 The Comedian이라 정했는지 단적으로 확인시켜주며, 악한이자 비열한 안티히어로로 비추어지던 그의 죽음 앞에 히어로들은 왜 고개를 떨구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마스크 뒤에 숨어 온갖 악행, 배려심이 결여된 잔혹한 박해를 일삼던 그의 인생이란 결국, 현대 사회의 풍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미국의 자만한 외교적 행태나, 왜곡된 영웅주의에 물든 그들의 자만심에 대한 면죄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saint)이 될 수 없음에도 그들의 흉내를 내는 히어로들의 행진 속에서, 그 본질을 꿰뚫어보고 자신이 그 불합리성의 대표가 되어 그것을 폭로한 슬픈 광대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Muzeholic 스스로가 그런 삶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의 부조리를 일일히 감시할 수 없고, 그것의 부당함을 일일히 주장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물론 Comedian과 같이 그 스스로가 패러디 자체가 될 수는 없지만, 그 패러디를 지적해줄 수는 있으니까.

Silk Spectre.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위선 속에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다. 잘못된 것을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들도 있고, '옳음'의 가면을 쓰고 악을 행하기도 한다. 그것을 때려잡아 완벽하게 고칠 수 있었다면 아마 우리는 여기 없었을테지. 이미 지상의 유토피아가 형성되었을 것이니까. 무너져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든 손가락 끝으로 붙잡으려 하는 자들, 그들을 우리는 히어로라 부르고 그런 우리의 뺨을 때리는 것이 바로 이 그래픽 노블 Watchmen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심리적 어둠은 히어로들 만의 것이 아닌, 현대 사회와 현대인 한 명 한명의 모든 어둠 그 자체이다. 사람은 자신의 안에 히어로와 악당을 함께 지니고 살기 때문에 끊임없이 위선적이되고, 위악적이 되어간다. Comedian의 경우 위악에 해당하겠지만, 광대는 히어로도 악당도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스토리텔러일 뿐. 따라서 우리는 서두의 질문이었던, "Who watches the watchmen?"이라는 질문에 어느정도 답을 내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오늘도 사회의 안정과 시민들의 안녕을 위한다는 세계 정치의 위선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잘난 '야경꾼'님들은 누가 감시해주는가에 있다. 아무도 없다. 그게 위선인지 아닌지 조차 구분하기 힘든 현대인들은 이미, 그들이 약속하는 거짓 유토피아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꿰뚫어볼 존재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 가면을 벗겨낼 용기가 있는 자들이 21세기의 히어로가 되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실제로 요즘의 히어로물들을 보면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Muzeholic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아메리칸 조크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영웅주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반복했던 단 한마디. "우리가 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Alan Moore의 예견처럼, 세상은 이제 더이상 히어로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Watchmen 작품 속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형식을 차용해 등장하는 Tales of the Black Freighter처럼 자신의 심리적 안녕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발버둥 쳐 얻은 결과가 최악의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히어로들의 좌절스러운 위선이 결국 현대 사회를 멸망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 열광한다. 그건 어쩌면 그들의 정신적 연약함 속에서, 인간적 오류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현대인들은 삶에 치이면서도 자신 안의 히어로를 키워나간다. 스스로 야경꾼이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야경꾼들의 위선을 판단해내기 위해서. 보통의 경우 사실이라고 해서, 히어로의 역할이 야경꾼(watchmen)으로만 규정될 필요는 없다. 정치적인 견해가 어떻든,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이 세계에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행위, 그 자체가 Heroism을 정의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필자는, 사회를 패러디하는 슬픈 광대로의 발걸음을 한 발 더 딛는 셈이다.

The Newsstand.

  1. Yes24Watchmen 책 소개 [본문으로]
  2. 이는 필자의 짧은 지식과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엮은 결과이고, 실제 모델로 삼은 히어로들은 전혀 다르다고 하니 궁금하다면 해당 하이퍼링크를 참조하기 바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