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k Knight (2008) : Why So Serious?

MuzeWeek/Culture 2008. 8. 6. 23:17

The Joker is in town.

오늘 슬픈 영화를 보았다. 너무나 무섭도록 슬퍼서,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영화를. 아직도 전율이 내 몸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스크린 앞에 앉았던 것일까. 액션 블록버스터? 마스크를 쓴 영웅에 대한 고찰? 아니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마지막을 장식했던 한 인간? 내가 도대체 뭘 기대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 없다. 왜냐면 그게 무엇이었든, 난 그 모든 것을 뒤엎을 게임을 보았기에. 애시당초에 계획은 이랬다. Tim BurtonBatman(1989)The Dark Knight(2008)조커(the joker)라는 매개를 통해 비교해보는 것이 재밌을 것 같다고. 히스 레저의 조커가 잭 니콜슨의 조커와 어떻게 달랐는지 확인하며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을거라고. 너무 안이했던걸까. 설마 이토록 안타깝고, 무섭고, 슬픈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러다가는 조커가 내 입에 칼을 들이밀며 "Why so serious?"라고 물어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다. The Dark Knight(2008)는 배트맨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커를 위한 영화인가 하면, 그 역시 아니다. 그 어떤 등장인물에 대한 영화도 아닌, 바로 고담시(Gotham City) 그 자체에 대한 영화다. 즉 다시 말해, 현대 사회와 그 시스템, 도덕성에 대한 총체적인 담론,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카드 게임에 대한 영화라는 이야기다.

팀 버튼의 Batman(1989)에서 Jack Nicholson이 분한 조커는 캐릭터의 완성도로 따지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미치광이 광대로서의 완벽한 이미지란 팀 버튼 식의 동화적 배트맨에게 어울렸을지 몰라도 철저히 현실화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을 맞설 archenemy(대적, 大敵)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The Dark Knight(2008)에서는 1989년의 조커와 전혀 다른 새로운 조커를 창조해냈다. 감독이 밝히길, Heath Ledger 본인이 직접 이 새로운 조커 캐릭터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 새로운 조커란 오히려 실제 정신질환자의 것에 더 가깝기에 표면으로 표출되는 임팩트는 이전에 비해 덜한 면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실제 정신질환자들이나, 연쇄살인범들은 잭 니콜슨처럼 요란스럽지 않거든. 아무튼 배우 본인이 직접 분석한 이 조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psychopathic, mass murdering, schizophrenic clown with zero empathy." "미치광이에, 학살을 즐기고, 일말의 동정심이 없는 정신분열증 광대." 그리고 감독은 그의 이런 무정부주의적 해석(anarchic interpretation)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렇다. 바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아나키즘의 광대(anarchy clown)였던 것이다.

Why so serious?

"Have you ever danced with the devil in the pale moonlight?" "자네,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악마와 춤을 춰본 적이 있나?" 1989년의 조커가 사람을 죽이기 전 반드시 하던 대사다. 이 대사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테니 여기서 필요한 요점만 말해보자면, '춤'에 주목하자. 잭 니콜슨의 조커는 자신을 예술가로 여기며, 끊임없이 춤추고 조각한다. 이렇듯 미치광이 광대는 춤추고 노래해야 제 맛 아니던가? 그런데 다크나이트(2008)의 조커는 춤추지 않는다. 애시당초에 누군가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다. 그는 철저하게 정신병적 살인마이지, 뒤틀린 예술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왜 the joker라는 이름을 쓰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광대'의 이미지와 멀어보인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섬뜩한 악마를 the joker라는 광대로 기억하는가. 바로 그는 이 미쳐가는 사회를 통째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Watchmen 리뷰에서 The Comedian이라는 캐릭터를 다루며 인용했던 부분을 그대로 가져와볼까. "He saw the true face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choose to become a reflection, a parody of it. No one else saw the joke." "그는 가면 벗은 20세기의 맨 얼굴을 보았고, 그것을 반영하는 패러디가 되고자 했다. 아무도 그 조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뿐. " (다크나이트의 경우는 21세기라는 차이 정도.)

적절한 Batpod. 미니멀리즘의 극치.

다크나이트(2008)의 조커는 물론 코미디언과 다른 길을 택했던 것이지만, 본질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masked vigilante(마스크를 쓴 영웅)라는 개념에 대항했으며, 현대사회의 썩어가는 시스템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광대라는 단어보다, 딜러(dealer) 혹은 게임 마스터(GM, the gamemaster)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그 게임이란 무엇인가? 국지적으로는 쏘우(Saw) 영화 시리즈에 등장할 법한 뒤틀린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각주:1]도 등장하고, 히어로물에 꽤 단골로 등장하는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게임도 보인다. 하지만 그 자잘한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가장 큰 그림으로 보면, 이 영화는 조커가 직접 딜하는 '고담시 붕괴 게임'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중요한 룰이 무엇인가 하면, 철저한 랜덤성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 조커 자신이 말하듯, 그는 '계획'보다는 돌발의 미덕을 우선시 한다. 마치 개가 자동차를 따라 달리며 미친듯이 짖듯이. 따라서 이 게임의 묘미는, 플레이어가 반응하는 순간 다음 스테이지가 변형된다는 데에 있다. 그 플레이어가 배트맨이든, 고든이든, 아니면 하비 덴트든 상관없이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과 함께 미궁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커가 이 마스터플랜 게임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배트맨의 몰락도 아니었고, 이전 범죄세계로의 회귀도, 그렇다고 더 많은 살인도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물리적, 정신적인 측면 모두에서의 완벽한 시스템 붕괴. 그리고 철저한 패닉. 그는 현대사회에의 둘도 없는 saboteur(파괴공작원)이다. 현실 세계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찾자면 바이러스(virus)에 해당할까. 알프레드의 대사 중 이런 말이 등장한다. "Some men just want to watch the world burn." "어떤 사람들은 그냥 세상이 불타는 걸 보고 싶어할 뿐입니다." 이 문장이야 말로 조커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무엇인가가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자와, 그것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자들간의 게임. 그리고 이 게임에서 배트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 플레이어는 바로 Harvey Dent(하비 덴트)다. 배트맨도 결국엔 vigilante(자경단)에 불과하다면, 하비 덴트는 공권력(법적으로 허용된 사실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Gotham's White Knight(고담시의 백기사)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배트맨의 비타협적인 정의감을 공유하는 동시에, 공권력과 모든 영웅의 자질을 갖춘 이른바 완벽한 아메리칸 히어로(american hero)의 상을 보여준다. 그러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변질된 자경단(distorted vigilante)적 성향[각주:2]을 띄는 Two-Face(투페이스)가 되는데, 이는 서사 진행에 있어 배트맨의 선택과 대조되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커가 현대 사회의 집단적 악(evil), 무너져가는 시스템 전반에 대한 패러디라면, 하비 덴트는 미국 사회의 집단적 선(good), 공평한 기회와 정의구현에 대한 패러디다. 그가 버릇처럼 보이는 동전 던지기(coin tossing)운(luck, chance)에 대한 견해는 바로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가 기반해 있는 기회균등과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평등한 정의(...뭐 실제로 그렇고 아니고를 떠나서 일단 '표방'하고 있으니까)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과는 다른 것이, 조커의 승리는 배트맨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커는 배트맨이 아닌 하비 덴트를 쓰러트렸다. 왜냐면 그는 고담시가 까치발을 들고 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스템의 기반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배트맨은 그 업보를 자신이 들쳐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조커가 고담시의 범죄세계에 철저한 아나키즘적 질서를 가져왔다면,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을 누군가는 있어야 하기에. 아메리칸 히어로인 The White Knight가 무너져버린 지금, 그는 암흑 속에서 묵묵히 이 사회를 보호하는 어둠의 기사(The Dark Knight)가 되어야 했기에. 이 영화가 슬픈 이유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어나가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의 배트맨이 안티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아무리 가상의 도시라지만 한 사회가, 그것이 기반한 시스템과 양심, 믿음이 이렇게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추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으로서는, 자신이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기에 가슴이 갑갑해진다. 이 사회 전반의 양심에 대한 테스트, 과연 우리는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받아낼 수가 없다. 나는 선택할 수가 없다. 우리의 The Dark Knight는 심연을 응시할 만큼 강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쳐다볼 수가 없다. "Why so serious?" 왜 그렇게 심각하냐고? ...그건 무섭기 때문이다.

Battle not with the monsters, lest ye become a monster,
and if you gaze into the abyss, the abyss gazes also into you.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괴물과 싸우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괴물이 되리라.
네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 볼 것이다.

- 프레드리히 빌헬름 니체.

네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2008년 8월 7일자 Post Script : (스포일러성)
drzekil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금 더 자세하게 적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왜 배트맨이 하비 덴트를 보호하는 결말로 끝났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drzekil님은 배트맨과 고든 국장이 고담시민들에 조금만 더 믿음을 가졌더라면 진실을 그대로 발표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물론 그럴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였고, 배트맨은 둘 중 어느 길을 선택해도 됐으니까. 고담 시민이 Prisoner's Dilemma를 통과한 것은, 아직 그들의 사회적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했음에도 배트맨이 그와 같은 결말을 택한 것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다. 고담 시민들의 양심 부재 여부와 상관 없이 그들에게는 사회적 영웅이 필요했다. 관객의 입장에서야 "그게 왜 배트맨이 되면 안 되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미 고담 시민들에게 불신과 공포의 대상으로 이미지가 굳어져가는 배트맨 자신이나,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고든 국장의 입장에서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던 것 아닐까. 오해는 양심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니까 말이다.

더불어 이 문제에서는 배트맨의 안위 뿐 아니라 죽은 하비 덴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관객이 보기엔 오해받고 쫓기는 배트맨의 처지가 안타까울 수 있지만, 결국 배트수트를 벗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가면을 쓰면 실제로 받을 불이익은 크지 않거든. 진실을 밝혀서 고담시가 한때 가졌던 백기사의 희망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을 희생해서 고담시민들의 정의감에 불을 지필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이의 선택은, 단순히 고담시민에 대한 믿음으로 결론지어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선택의 주체가, 추락의 공포[각주:3]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배트맨이라면 꽤 예측가능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더불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그렇게 하비 덴트의 명성을 지키려 한 것은, 레이첼의 죽음에 대한 속죄의 뜻도 있지 않을까.
You either die a hero,
or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죽어서 영웅이 되든가,
아니면 스스로가 악당이 되는걸 지켜볼 때까지 살아남든가..

light and darkness..

2008년 8월 13일자 Post Script :
리플을 주고 받다 문득 생각이 나서 짧게 적어본다. 팀버튼의 1989년 배트맨 영화에는 "Have you ever danced with the devil in the pale moonlight?"라는 조커의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한다. 일종의 살인예고(?)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럼 The Dark Knight(2008)에서 이에 해당하는 문구는 뭘까? "Why so serious?"일까. 엄격히 말하면 아니다. 오히려 "Do you know how I got these scars?"라는 대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임팩트가 안습임으로, 히스 레저의 조커는 보통은 "Why so serious?"로 기억되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이 "Do you know..."보다 "Why..."를 좀 더 자주 해주었으면 확실히 그 자리를 굳힐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 욕심인가?

Bonus : The Dark Knight (2008) 전체 스크립트


  1. 꽤 유명하고 기본적인 게임 이론의 하나. 여기서 설명할 시간은 부족하고,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링크를 참조. [본문으로]
  2. 누군가가 "부시 대통령이 다크나이트와 비슷한 이유"인가 뭔가에 대해 작성한 글이 있다고 하는데, 엄격히 말하면 조지 W. 부시는 배트맨이 아니라 이 하비 덴트, 혹은 Two-Face를 닮았다고 해야겠지. [본문으로]
  3. Batman Begins 리뷰 후반부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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