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ry Planet : 그들의 수첩을 들여다보자.

MuzeWeek/Culture 2008. 5. 13. 05:54
헝그리 플래닛(양장본) 상세보기
피터 멘절 지음 | 윌북 펴냄
24개국 30가족 600끼니,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헝그리 플래닛>은 전 세계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세계인들의 먹거리'를 심층적으로 취재한 흥미진진한 보고서이자 여행기이며 사진집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전 세계 24개국을 돌면서 총 30가족을 만나 가족 구성원들이 일주일 동안 소비하는 식품과 그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에 담아내었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 말리

이 책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의 느낌은 (그러니까 목차 훑어보고 이리저리 뒤적거려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엄청 두꺼운 카탈로그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신기한 김에 사보긴 했는데, 그 후 몇 주간 손에 잡히질 않더군요. 물론 한창 일리움을 읽고 있기도 했거니와 업무에 치여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당시만 해도 '카탈로그'라는 첫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어느 장소에서 어느만큼의 시간을 할애해서 읽어야 하는지도 결정하기 쉽지 않았죠. 그래서 지난 5월 2일~5일 동안 계획했던 부산 여행 동안 읽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기간 동안 호텔 부근에서 죽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죠.)

사실 그 첫인상은 책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적어도 한 가지에서는 옳았죠. '엄청 두껍다'는 것. 사실 페이지수와 엄청난 양의 사진들을 감안하면 분명 내용은 많지 않아야 정상인데, 의외로 다 읽는데 시간이 걸리더군요. (양장본이라 책 무게도.../후략) 여튼 그건 그렇지만, 이 책은 카탈로그라기보다는 오히려 여행수첩에 가깝습니다. 애시당초에 카탈로그라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가, 사진이 다량 포함된 어떤 음식이나 식생활에의 소개라는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메인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것이었죠. 그렇다고 글이 메인인가? 그것도 사실 아니거든요. 생각이 여기까지 오면 나가는 결론은 딱 한가지입니다. 이 책은 블로그에 올라올 법한 네티즌 리뷰를 모아둔 것 뿐이라는 것이죠. 다만 상당히 다양한 지리적 경험과 기회가 받침이 되었기에 책으로 출간해도 될만한 퀄리티를 지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영문 원판의 커버.

왜 그런지 한번 제 기억을 더듬어볼까요. 맨 처음에 추천사, 프롤로그 등이 나오고 알파벳 순으로 정렬했기 때문인지 가장 먼저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의 두 가정이 소개되고, 그 후에 부탄(Bhutan), 중국(China)등을 지나기 시작할 때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다른 세계의 문화를 접한다는 것은 분명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더군다나 한 가정의 식문화를 취재한다면, 그들은 단순한 '손님'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가정집에 초대받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우리는 '와, 그 집 김치 진짜 짜드라'라든가 (물론 들리지 않게;;) 평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책 제목을 'What The World Eats'라고 거창하게 잡고 그에 걸맞게 타문화의 식생활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집필을 하든 사진을 찍었다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사람들은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다른 주변국들의 식문화를 탐험하고 다녔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습니다. 뭐 사실 음식에 관련해서는 세상 어느 문화권이라도 일단은 자신의 것을 우선시하기 마련입니다만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을 갈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의 시선으로 타문화권의 식생활을 판단하는 어조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하니 난감하더군요. 각 문화권마다 할당된 양도 제각각입니다. 어느 문화권은 수십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는 반면, 사진을 빼면 한 페이지도 전부 못 채울 수준으로 끝나는 가족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이 모든 거슬리는 점들은 앞에서 말한대로 이 책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이 책은 다른 식문화를 소개하는 카탈로그가 아니라, 여행기, 혹은 개인적인 리뷰에 가깝습니다. (...각 나라 별로 별점 안 준게 다행입니다.) 그렇게 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죠. 독자들은 단지, 꽤 양질의 종이에 인쇄된 사진작가의 맛깔스러운 사진들과 그에 어우러진 나름 전문적인 여행기를 돈주고 소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개인적인 취향과 편견이 가미될 수 있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죠.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솔직한 죄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초반에는 막 짜증이 나려고 하다가도, 중후반으로 가면 피식피식 웃으며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책이 된 것이죠. 또한 주관적 취향이 반영되어 제한적이긴 했어도 상당히 다양한 문화권의 이슈들도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령, 작가가 여성이다보니 각 문화권의 여성의 생활에 대한 기술이 많습니다.)

식문화란 어떤 문화권을 이해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이란 해당 지역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타문화권의 음식을 접한다는 것은 그 심장 깊숙이 손을 뻗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물론 급속히 진전중인 세계화의 영향으로, 그리고 미국의 초국가적 기업들의 영향으로 현대인들의 식탁은 다 비스무리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 책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질화에도 불구하고, 혹은 현재진행형인 수많은 식량부족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자신들 만의 식문화를 즐기며 먹고 살고 있습니다. 전 아직도 2004년도 Pax Europa 프로젝트 당시 자금적으로나 상황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그런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이 책의 저자 부부가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여행하며 한 명은 사진을 찍고, 한 명은 글을 쓰며 자유롭게 (실제로 자유롭진 않고 국제적으로 치이겠지만) 방랑하는 삶. 실제로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벌레를 먹는 법[각주:1]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음식'에 관련된 것들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문가지만, 적어도 음식에 있어서는 아마추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세상은 이 솔직하고 다채로운 리뷰에 공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은, 뭘 드시고 계십니까?

* 다음은 타임지 포토 에세이로 게재된 Hungry Planet의 사진들입니다.
What The World Eats : Part 1
What The World Eats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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